1. 퍼블리셔가 없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게 가장 중요하다. 지금까지 퍼블리셔의 간섭때문에 피해입은 게임들을 보면서 피눈물을 흘렸을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게임의 컨셉에 어울리지 않는 요소를 억지로 추가시키거나 등급을 낮추기 위한 컨텐츠 삭제는 기본이고 아직 완성되지도 않은 게임을 급하게 출시하거나 거의 완성된 게임을 취소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제는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해도 무조건 기존의 히트작과 비슷하지 않으면 계약조차 불가능한 지경이기에 좋은 게임이 거대 퍼블리셔를 통해 출시되는건 아예 원천봉쇄된 상태이다. 나는 웨이스트랜드2가 EA같은 거대 퍼블리셔 딱지 달고 나온다고 했다면 아마 쳐다보지도 않았을것이다.
2. 중~저예산
이것도 당연한 얘기지만 수백억짜리 게임은 수백만장을 팔아야 하기 때문에 전문성이 떨어질수밖에 없다. 수백억짜리 RPG에서 깊이있는 RPG경험을 기대하는건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작가주의를 기대하는것과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너무 저예산이면 게임의 규모, 기술등이 너무 왜소해져서 데모게임같은 맛보기용 게임이 될수밖에 없다. 처음 웨이스트랜드2 킥스타터 모금이 시작됐을때 그래도 백만 달러는 좀 부족한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는데 결국 3백만 달러가 모이면서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지점에 도달했다. 빡빡한 예산이지만 좋은 게임을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는 예산이다. 이 빡빡함이 개발자들의 긴장감을 유지시키기에도 좋을것이다.
3. 원작의 핵심 디자이너들 참여
웨이스트랜드는 켄 세인트 안드레와 마이클 스택폴이 없었다면 나올수 없었던 게임이다. 이들이 게임제작자이면서도 소설가였기 때문에 멋진 스토리와 비선형적 게임플레이를 결합할수 있었고 TRPG적인 스킬기반 게임플레이도 순전히 이들의 공이었다. 게다가 이사람들은 PC게임이 망하기 시작하던 90년대 중반부터는 게임산업에서 발을 뺐기 때문에 요즘의 병맛나는 게임산업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게임 제작자들이기도 하다. 생계가 아니라 취미로 게임을 만들던 80년대의 그 순수한 게임 제작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이 극도로 제한된 기술이라는 속박에서 벗어났을때 어떤 결과물을 보여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4. 브라이언 파고의 웨이스트랜드2에 대한 불타는 열정
아마 기억하는 사람 거의 없겠지만 바즈테일(나중에 나온거)출시전에 브라이언 파고가 한국에 온적이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바즈테일 홍보라고 했지만 당시에 엔씨소프트, 웹젠 기타등등 한국 온라인 게임 회사들과 만나고 다녀서 온라인 게임을 만들려는게 아니냐 하는 소문이 돌았었다. 아~ 이사람마저 온라인 게임으로 가나 하고 씁쓸한 감정을 품었던 기억이 남아있다. 그런데 그때 왜 한국에 왔었는지가 최근의 인터뷰로 밝혀졌다. 충격적이게도 온라인 게임 만들자고 온게 아니라 웨이스트랜드2 퍼블리셔를 찾으려고 온것이었다. 북미와 유럽의 퍼블리셔들을 다 돌아다녀도 받아주지 않자 웨이스트랜드2좀 만들게 해달라고 아시아까지 돌아다녔던 것이다. EA로부터 웨이스트랜드 판권을 되찾자마자 전세계를 떠돌았지만 모두 실패했는데 그럼에도 제이슨 엔더슨을 영입해 1년간 프리 프로덕션 작업까지 진행했다. 이 자료를 들고 최근까지 계속 퍼블리셔를 찾아다니다가 결국 포기하고는 '웨이스트랜드2는 끝났어'라고 판단한 순간 팀 셰이퍼의 킥스타터 모금 소식이 들려왔고 여기에 최후의 희망을 걸었다고 한다. 웨이스트랜드2는 결코 급조된 프로젝트가 아니라 최소 10년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지난한 역경을 거쳤던 프로젝트인 것이다. 게임 하나를 만들고자 이렇게까지 처절한 과정을 거쳤으니 최근 브라이언 파고가 퍼블리셔에 대해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반감이 단순한 쇼맨쉽은 아닌듯하다.
5. 인엑사일의 상황
브라이언 파고의 회사인 인엑사일은 작은 회사이지만 현재 재정적으로 위기인 상황은 아닌것 같다. 바즈테일이나 헌티드나 별로 상업적으로 성공한 작품은 아닌듯 하지만 최근에 발매한 Choplifter HD라는 폰게임-_-;스러운 캐주얼 게임과 바즈테일 iOS포팅으로 꽤 돈이 벌리는 모양이다. 재정적으로 막다른 상황에 몰려서 웨이스트랜드라는 카드를 꺼낸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할 필요는 없을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웨이스트랜드2 제작이 예상을 벗어나 좀 오래걸리더라도 다른 게임으로 번 돈을 투입할수 있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을것이라는 얘기를 하더라.
6. 무거운 책임
현재 브라이언 파고는 어느때보다도 게임의 질에 대한 커다란 압박감을 가지고 있는것 같다. 그도 그럴것이 이전까지는 퍼블리셔 중역들 몇몇만 신경쓰면 됐겠지만 이제는 무려 6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직접 자금을 댔으니 그들을 실망시켰을 경우의 후폭풍이 어떨지는 상상조차 힘들다. 만약 먹튀스러운 결과물이 나온다면 심각한 소송이 걸릴수도 있으며 게임제작자로서의 명성은 완전히 사라지고 두번다시 재기불가능한 악명을 얻게 될것이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개인 레벨의 위험이며 현재 웨이스트랜드2에 대한 기대는 단순히 한 게임의 성공이냐 실패냐가 아니라 PC게이머들의 크라우드펀딩이라는 가나안땅으로의 이주가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의 게임산업의 미래가 달린 중대한 시험이기도 하다. 만약 실패한다면 게임 하나 말아먹고 제작자 한명의 경력이 끝나는 정도가 아니라 게임산업이 거대자본으로부터 독립하여 새로운 문화예술매체로 성장할 기회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가 될수도있다. 이런 상황에서 먹튀짓을 한다거나 상업적 성공을 위해 RPG팬들을 배반한다는것은 머리가 아주 나쁘거나 사이코패스가 아니면 하기 힘든 일이다.
블록버스터는 아니지만 영화는 헐리우드 산업 안에서도 작가주의가 가능하지요. 지금도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필두로 한 노장들, 코엔 형제, 폴 토마스 앤더슨, 데이빗 핀처 등이 좋은 영화를 찍고 있죠.
답글삭제사실 영화나 게임은 거대 자본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소설이나 음악과는 많이 다르지만 영화는 '관객의 오해'를 통해 자본과 작가주의가 공존하는게 어느정도 가능한 상황입니다. 일반 관객들과 투자자들을 위한 서비스씬을 넣어 약간의 타협을 하고 다른 차원에서는 자기 이야기를 하는 그런 경우 말입니다.
현재 게임이 영화와 같은 '대중의 오해'를 통한 공존이 안되는 이유는 제 생각에
1. (영화에 비해)협소한 시장
2. 게임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소비자가 없음.
곁다리지만 웃긴 이야기를 하자면 로저 에버트 따위가 게임은 예술이 될 수 없다고 한다는 것이죠. 로저 에버트는 미국 대중들에게나 전문가 취급 받지 진짜 전문가들에게는 손가락이나 올리고 대중과 영합하는 사기꾼이거든요.
무거운 책임..정말 그럴것도 같습니다..
답글삭제아마도 오히려 결과가 좋지 않기를 바라는 업체도 있을듯 하네요...
'그럼 그렇지...맘만으론 되는게 아니야..'
이러면서요... ㅡㅡ;;
그나저나 Choplifter HD란 게임이 매출이 있다고 하시니.. 아마도 추측건데 캐주얼측면뿐만 아니라 고전 게임에 대한 향수로 제법 올드 게이머한테도 먹히고 있나 봅니다.
저는 데모보고는 '아~~~~ 저 게임~~!!! 와.. 해보고 싶네.' 그랬었거든요..
네민 /
답글삭제1. 게임도 한때는 그럴때가 있었어요. 게임에서는 그래픽이 대중을 낚는 미끼역할을 했죠. 모로윈드같은 경우 어느정도 타협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절대 수백만장 팔릴 게임은 아닌데 그래픽 덕을 많이 봤죠. 이게 더이상 안통하는 이유는 그래픽이 상향평준화가 되어버려서 더이상 그래픽 쇼크를 주기가 힘들다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2. 저는 시장의 크기보다는 시장의 질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시장의 질은 또한 생산자의 질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구요. 좋은 생산자가 게임산업에 들어오고 활발히 활동해서 좋은 작품이 많이 나와야 게임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소비자도 생기는거죠. 아무것도 없는데 소비자가 먼저 진지함을 요구 할수는 없거든요. 문제는 현 게임산업의 구조가 좋은 게임이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구조기 때문에 좋은 생산자가 살아남을수 없다는 겁니다. 퍼블리셔들은 개발자들 등쳐먹고 있고 리뷰어들은 안목이 없죠. 이러면 발전이 있을수가 없어요. 맨날 제자리에서 맴돌다 끝나는거죠.
3. 로저 이버트는 원래부터 대중을 대상으로한 상업영화 평론가인데 대중과 영합한다는 평가는 좀 어울리지 않는거 같습니다.
neoSpirits / 올드게이머라고 꼭 캐주얼한 게임 싫어하는건 아니죠. 저도 Choplifter였는지 뭔지 비슷한 게임을 어렸을때 해본 기억이 나네요.^^;
로저 이버트가 상업영화 평론가는 맞지요. 다만 자기 자리를 잘 아는 사람이 아닙니다. 가식이 아주 심하죠. 로저 이버트가 쓴 책에 오즈 야스지로의 동경 이야기를 찬양하는 부분을 보면 웃기지도 않거든요. 자기 주제를 아는 사람 같았으면 그런 영화는 입 밖에 꺼내지도 않습니다.
답글삭제네민 / ㅋㅋㅋㅋ 아트필름쪽으로 오면 평가가 좀 이상하긴 하더군요. 소더버그의 솔라리스가 타르코프스키의 솔라리스보다 평점이 높다던지-_-;
답글삭제껍질인간님 혹시 그림락grimrock의 전설 해보셨나요? 던전rpg의 부활, 뭐 이러면서 평점 되게 좋던데, 혹시 리뷰해보실 생각 없나요?
답글삭제익명 / 4번째인가 5번째인가 받는 질문이네요.^^;; 하기싫어도 해야될거 같습니다.
답글삭제(Onesin)
답글삭제로저 에버트 저 영감은 정말 뭘 기준으로 평가하는지 햇갈릴때가 있더군요. 이번에 나온 레이드만 해도 액션의 극의를 보여주는 작품이였는데 고작 지저분(?)하단 이유로 1점주고죠 -_-..
아니 취향이란게 있겟지만 마치 그냥 대충본듯한 뉘양스 (혹은 액션은 가치가 없다는)로 저렇게 말하니까 정말 프로인지 의심스럽단 말이지요.. 껍질님 처럼 혹평이 납득가게 말하는것도 아니고요.
익명/
답글삭제Legend of Grimrock을 나오자마자 엔딩을 봤었는데...
사실, 리뷰할꺼리는 별로 없는거 같습니다. 거의 없다고 봐야할 정도로 간단한 스토리인데다가, 던전 탐험이 전부인지라....
저 개인적인 느낌으론 던전크롤러의 DOOM이라고 할까나(출구 찾고 그 과정중에 강력한 무기를 얻고 몹을 쓸어버리는 아주 원초적인)... ㅡㅡ;;
물론 현대적인 감각의 그래픽과 실시간 전투 및 퍼즐의 결합은 나름대로 참신한 시도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마법 시전 시스템도 캐스팅할 마법을 선택후 그것을 외우는 과정(여기에서는 캐스팅할때마다 그것을 해당 룬 문자 조합으로 표현)이 더욱 긴장감 있게 만들죠.
또한, 퍼즐 부분이 실시간이란것과 만나서 단순히 느긋하게 생각만해서는 풀지 못하는것도 존재합니다. 즉, 빠른 손놀림을 요구할때도 있습니다. 저는 처음에 조금 당황스럽긴 했습니다. 전투부터 퍼즐까지 생각보단 꽤 컨트롤을 요구하더군요..
어찌됐던, 개인적으로는 대략 18시간정도 플레이하였는데 소소하게 재밌게 한것 같습니다. 말그대로 던전과 나와의 싸움입니다. 퍼즐이 주가 되겠고 몬스터는 그저 장식일뿐입니다. ㅎㅎ;;
아, 그리고, 맵 부분은 오토매핑을 켜거나 끌수 있습니다. 오토매핑을 끄고 하면 플탐이 두배정도로 늘어난다고 보시면 됩니다.
답글삭제또한, 현재 에디터가 제작중이므로 추후 다양한 유저맵이 나오리라 봅니다.
neoSpirits / 예로드신 대부분의 것들이 이미 던전마스터에 다 있던거예요. 이후로도 많은 게임들이 그 틀안에서 여러가지 시도를 해서 더이상 뽑아낼게 없는 장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제가 이 게임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거죠. 뭐 재밌는 게임이면 얼마든지 많이 나와도 좋긴 하겠지만요.
답글삭제던전rpg는 한번도 해본 적이 없기에, legend of grimrock을 GOG에서 구매한 후 해보았습니다.
답글삭제살떨리는 재미가 있더군요, 올드 스쿨 모드로 오토매핑 끄고 해보았습니다.
전투가 전부인것도 아니더군요. 몬스터는 가끔 가끔 나오지만, 난이도때문에 그냥 생각없이 하면 순살당하기 매우 쉽습니다.
입문용으로 좋은 것 같네요. 이 이후에 던전rpg를 몇개 해볼 생각입니다.
울티마 언더월드도 질렀구요. GOG는 게임을 많이 질러도 30불이하인게 마음에 들더군요.
아직 1층이긴 한데, 퍼즐이 너무 쉽긴 하네요. 조작법이 조금 불편하긴 한데, 이때문에 긴장감이 더 오는 것 같기도 하구요.
그런데 rest기능이 너무 강력합니다. 문을 레버로 잠겨서, 반대편에서 쉰다음에, 체력 마력 풀회복하고 공격하면 엔간하면 거의다 해결 가능합니다.
이것의 해결책은 간단할 것 같습니다. 몬스터의 체력도 회복하게 하면 될 것 같거든요. 어쨋든 신선한 체험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