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6/25

랜덤과 유니크

게임에는 보통 랜덤한 요소와 유니크한 요소가 같이 등장하는데, RPG에서는 주로 등장하는 몬스터나 아이템이 랜덤한 요소가 되고 던전구조나 퍼즐, 퀘스트 등이 직접 사람에 의해 디자인되는 유니크한 요소가 된다. 로그라이크 같은 경우는 거의 모든 요소가 프로그램의 알고리즘에 의한 랜덤요소가 되고 어드벤쳐게임 같은 경우는 대부분이 직접 사람이 작성한 유니크한 요소로 채워져있다.

난 랜덤요소가 많은 게임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싫어하는것은 아니다. 랜덤 요소가 많으면 그만큼 여러번 플레이시에도 같은 상황이 나오지 않아 리플레이 가치가 상당히 늘어난다. 그럼에도 랜덤한 요소보다 유니크한 요소를 선호하는 이유는 그것이 사람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알고리즘에 의해 컴퓨터로 만들어지는 요소들은 처음에는 잘 모르지만 게임을 하는 동안 여러번 접하게 되면 결국 패턴이 보이게 되고 똑같은 상황은 안만들어지더라도 마치 어떤 틀에 갖혀 있는듯한 반복적인 느낌을 주게된다. 그것이 아무리 정교하고 도전적인 싸움이 되더라도 마치 사람이 아닌 기계와의 싸움같은 어딘가 드라이한 느낌은 절대 제거할수가 없다.

반면에 사람이 직접 생각해서 만든 요소들은 한번 깨고나면 그만인 일회용이더라도 그것을 돌파했을때는 어떤 미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킬때가 있다. 그것이 단순한 하나의 퍼즐에 불과하더라도 거기에는 '이야기'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디자인 과정에서 만든 사람의 의도나 생각이 담길수밖에 없고 고생하면서 푸는 게이머는 제작자의 사고 과정을 따라갈수밖에 없다. 그것을 통해 게이머는 제작자의 생각을 읽게 되고 이것이 마치 제작자의 이야기를 듣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하는 것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작품을 통한 게이머와 제작자의 소통인 것이다.

싱글 게임에서 이런 소통이 빠지게 되면 게임이 굉장히 허무하게 느껴질때가 많다. 예술은 소통이며 소통이 없는 작품은 작품이 아니라 기능성 상품에 불과하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들수록 점점 전략게임이 멀어진다. AI를 상대로 세계정복이 끝나면 별로 느껴지는게 없이 허망하다. 물론 전략게임이라고 꼭 전부다 그런건 아니다. 알파 센타우리 같은 게임은 전략게임이면서도 유니크한 요소들이 첨가되어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다.

요즘에는 유니크한 요소가 많이 들어가도 게이머와 소통을 하는듯한 게임이 별로 없다. 그안에 담긴 제작자의 이야기가 자신의 비젼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에 대한 아부나 아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 아첨의 목적은 돈이고.

이제는 게이머조차 제작자와의 소통을 바라지 않는다. 멀티플레이를 통해 다른 게이머와 더욱더 직접적인 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소통보다 많은 생각과 시간이 필요한 간접적인 소통이 그립다. 왜냐면 온라인으로 만나는 대부분의 게이머보다 웬만한 게임 제작자가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댓글 9개:

  1. 이거랑은 멸개얘기인데 nsm53p 님 블로그에서도 보이시더군요... 위저드앤워리어가 그렇게 재밌나? ㅋㅋ 안해봤는데 한번 해봐야될거같음...

    저도 무분별한 랜덤요소보다는 그냥 아이템드랍정도만 랜덤인게 좋드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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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아아 위에 멸개가 아니라 별개......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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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ㅇㅁㅂ2 - 2010/06/26 09:17
    위저드앤워리어 진짜 몇안되는 명작입니다. 판타지 던전RPG의 정수라고 할만한 게임이죠. 간혹 이게임 별로라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RPG가 뭔지 모르거나 게임을 겉껍데기로만 판단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나름 명작 RPG는 대충 거의다 해봤다고 생각하는데 이만한 RPG 정말 드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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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근데 명제작자들도 나이들면 노망나는건지... 브래들리가 가장 최근에 만들었던 던전로드는 똥망냄새가 풀풀 나던데... 중반까지 해보다 접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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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ㅇㅁㅂ2 - 2010/06/26 12:30
    던전로드 똥망인가요? 데모밖에 안해봤지만 던전구성은 딱 브래들리표 던전같던데... 저는 던전은 괜찮아 보였는데 액션RPG라 포기했었거든요. 그래도 언제 한번 제대로 해볼려고 생각했던 게임중 하나였습니다. 개인적으로 현재 제대로 된 던전 만들수 있는 사람은 브래들리밖에 없다고 생각하기도 하구요.



    던전로드 던전은 어떤가요? 막 재밌는 퍼즐도 있고 한번 들어가면 나오기 힘들고 길찾기 어렵고 그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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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던전은 복잡하고 극악한데, 다른 요소들이 너무 배려놔서... 스토리는 재미없고, 버그는 많고, 최적화는 이상하고, 전투는 재미없고... 제목답게 '던전'만 괜찮고 뭔가 굉장히 안다듬어진 느낌...

    가장 중요한 전투가 별로 재미없는게 흠...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파티플레이RPG를 좋아해선지 좀 제 취향에 안맞는것도 있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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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ㅇㅁㅂ2 - 2010/06/26 13:53
    전투야 실시간 전투니만큼 애초부터 별 기대는 없었고 나머지 요소들은 그다지 중요한 요소는 아니네요. 버그는 게임진행이 안될정도로 심한것만 아니면 되는거고... 던전이 괜찮다면 꼭 한번 해봐야겠네요. 던전 좋은 게임을 한 10년간은 본적이 없는거 같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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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이 글을 읽으니 제가 온라인 게임을 유달리 싫어했던 이유를 새로이 깨달은 기분이네요.
    크리에이터가 소비자에게 전달하고자하는 온전한 의도를 느끼는 게임을 하길 바라지, 그저 시장 바닥에 던져둔 게임을 하고 싶지가 않다는 게 제 결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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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feveriot / 온라인 게임이 그런면이 강하죠. 사람이 많이 몰려야 되니 제작자 중심이 아니라 플레이어 중심이 될수밖에요. 저도 그래서 MMO게임들 별로 안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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