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3/13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RPG가 죽었다니! (4부)

3부에서는 위저드리에서 시작된 던전RPG가 어떻게 사라져갔는지를 이야기했다. 이제 남은 RPG의 두가지 특성, 퀘스트와 룰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보기에 앞서 90년대의 분위기를 먼저 설명할 필요가 있다. RPG에 있어 별거 없어 보이는 90년대 중후반이야말로 RPG의 운명을 결정하는 커다란 사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보통 CRPG의 역사와 관련된 글들을 보면 90년대 중반을 RPG가 죽었던 시기라고 주장하고 발더스게이트가 다시 RPG의 중흥을 이끈 게임으로 소개되는 경우가 많다. 거기다 90년대 중반에 RPG가 죽은 이유를 설명한답시고 RPG가 더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정체됐기 때문에 사람들이 RPG에 질려버렸다는 식의 개소리를 늘어놓기가 일쑤였고 아직까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90년대 초반까지 CRPG는 어떤 장르보다도 빠른 속도로 발전해온 장르였는데 발전이 없어서 사람들이 지겨워 했다니, 이 무슨 개가 소부랄 핥는 소리인가! 그럼 다른 장르는 왜 사람들이 재미없어 하지 않는가? 최근 FPS는 10년이 넘게 미칠듯이 따분한 레일슈터만 쏟아지고 있는데 안팔리기는 커녕 점점 더 많이 팔리고있다. 스포츠 게임은 매년 별 발전도 없이 이것저것 약간씩 튜닝해서 내는 수준임에도 항상 폭발적인 판매량을 보인다.

오히려 RPG는 발전이 너무 빨랐기 때문에 소비자가 그 발전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낙오했다는게 더 맞는 설명이다. 비행시뮬이 너무 발전해서 새로 유입되는 게이머가 팰콘4나 DCS같은 작품들은 대부분 손도 못대고 나가 떨어지는 경우와 비슷하다고 할까. 그러나 그건 좀더 이후의 90년대 후반 이야기이고 90년대 초반까지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오던 RPG가 갑자기 90년대 중반에 침묵기를 가지게된 진짜 이유는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에게 있었다.

다시 울티마 언더월드가 출시됐던 92년으로 되돌아가 보자. 3부에서 이미 했던 이야기지만 90년대 중반의 RPG씬 분위기를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어쩔수 없이 이때 이야기를 좀더 자세히 할수밖에 없다.

우선 울티마 언더월드가 나옴으로 인해 던전에서 더이상 예전의 2D 격자방식을 쓸수 없게 되자 RPG장르에 특별한 애착이 없던 떨거지 제작사들은 다들 울펜슈타인3D를 따라서 제작이 쉬운 FPS로 이동해 버렸다. 기존의 던전 제작 노하우도 FPS에 그대로 쓰일수 있었던데다가 그동안 RPG가 발전해 오면서 점점 스토리가 중요해 졌는데 골치아픈 스토리 문제도 없앨수 있었으니 그야말로 꿩먹고 알먹는 손쉬운 해결책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RPG장르를 지금까지 이끌어왔던 던전RPG제작사들은 지금까지 자기들이 항상 장르를 이끌어온 파이오니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울티마 언더월드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겠는가. 여기서 자기들 실력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예전에 하던대로 2D 격자식 던전이나 계속 만들까? 아니면 유행을 따라 콘솔냄새나는 가벼운 던전 슈팅게임이나 만들까? 뜬금없이 나타난 이 신생 제작사에게 80년대부터 꽉 쥐고 있던 최고의 RPG제작사라는 명예를 넘겨준채?

1인칭 턴제 전투의 새로운 진화 위저드리8

우선... 위저드리! 위저드리를 보자! 위저드리가 7편을 내놓은 92년 이후 갑자기 더이상 위저드리는 나오지 않았다. 데이빗 브래들리의 위자드앤 워리어는 그로부터 8년이나 지난 2000년에나 나왔고 정식 위저드리 8편은 9년이 지난 2001년에나 나왔다. 위저드리가 7편에서 사람들에게 버림받기는 커녕 최고의 작품으로 손꼽히고 큰 성공을 했는데 왜 90년대가 통째로 날아가버리는동안 위저드리는 단 한편도 발매되지 않았을까?

그 이유는 울티마 언더월드를 따라 시리즈를 2D에서 3D로 바꾸는데 따른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엄청난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한 게임을 가지고 무려 8,9년씩이나 만든것이었다. 3D로 대작RPG를 만들기엔 소규모 인원과 1,2년의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울티마 언더월드나 시스템쇼크같은 게임들은 던전이 하나뿐인 비교적 소품이었기에 빠른시간에 제작이 가능했던 것이지 위저드리7편처럼 여러개의 던전과 거대한 필드까지 3D로 만든다는것은 완전히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그당시에는 그냥 3D 공간 자체를 구성하는것만으로도 힘든 일이었는데 거기다 10년이 넘게 발전해 오면서 거대해진 RPG의 요소들을 3D로 한꺼번에 플러스 알파까지 해서 옮기려는 시도는 무모한 짓이었다.

그러나 전통의 RPG제작자들은 처음으로 3D를 만드니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그저 루킹글래스같은 신생 제작사도 했으니 우리도 할수 있겠지 하고 덤벼들었지만 2D로 할수 있었던게 생각처럼 그냥 쉽게 3D로 옮겨지지는 않았다. 모든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고 3D기술은 예상을 뛰어넘어 광속으로 발전해서 그동안 만들었던 내용물은 순식간에 시대에 뒤쳐진 그래픽이 되어가니 계속해서 출시를 연기 할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최종 결과물은 동시대의 3D게임에 비해 한참 그래픽이 후달렸으니 3D로의 전환이 기존의 RPG 제작자들에게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를 짐작할수 있다.

처음으로 3D를 시도함으로서 생긴 이러한 기술적 장애는 위저드리만 겪은게 아니었다. 마이트앤 매직은 5편인 다크사이드 오브 진이 93년에 나왔고 그 이후로 첫 3D인 6편이 나오기까지 5년이나 걸렸다. 한마디로 울티마 언더월드가 던전RPG를 만들던 기존의 제작사에게는 재앙이나 마찬가지였고 이 괴물같은 게임이 몇년만 더 늦게 나왔더라면 그동안 훌륭한 2D 던전RPG가 몇작품은 더 나왔을게 분명했다.

한국에선 힘센이끼로 유명한 마이트앤 매직 6

그럼 던전RPG 말고 다른쪽은 왜 90년대 중반에 갑자기 침묵했을까? 울티마의 경우는 1인칭도 아니었고 던전RPG도 아니었으니 울티마 언더월드와 상관없이 당당하게 94년에 2D로 8편을 낼수 있었지만 이후 울티마 온라인이라는 새로운 거대 프로젝트를 진행하느라 9편은 계속 연기가 되어 99년에야 급조되어 나올수 있었다. 울티마 본편으로 따지면 8편과 9편에 긴 공백기가 있었던 셈이 되지만 사실상 MMORPG의 시초라고 할수있는 울티마 온라인이야말로 8,9편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울티마의 혁신성을 이어간 진정한 본편이나 다름없는 초 대작이었다.

이런 엄청난 물건을 만드는데 짧은 시간이 걸릴리가 없고 몇년씩이나 잡아먹는건 당연한 일이었는데도 88년에서 92년 사이에 너무나 많은 RPG들이 한꺼번에 쏟아지다 보니 다들 마치 대작 RPG가 1년에 몇개쯤은 나오는게 당연한거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거였다. 사실은 그때가 비정상이라고 할수 있는 시기였는데 말이다.

던전RPG가 침묵하는 사이에 퀘스트RPG의 대명사라고 할수 있는 울티마 마저도 몇년간 보이지 않게 되자 다들 여기저기서 RPG가 왜 안나오냐고 웅성대기 시작했다. 당장 하나라도 더 RPG가 나와야할 이런 급박한 상황하에서 RPG 4대 제작사중 마지막 남은 인터플레이 마저도 당시에는 뻘짓중의 개뻘짓을 일삼고 있었으니 참으로 기가막힌 타이밍이었다.

진짜 가짜세계 울티마 온라인

인터플레이는 드래곤 워즈를 출시한 이후 던전마스터 형식의 RPG제작을 시도했는데 던전마스터와는 다르게 1인칭 2D 격자 이동시에 딱딱 끊겨서 이동하는게 아니라 중간에 프레임을 넣어 부드럽게 격자를 이동하는 방식을 만들려고 했다. 이는 원래 인터플레이의 첫 작품인 바즈테일에서도 선보였던 모습이지만 그때는 단지 전진시에만 그렇게 보였을뿐 90도 회전시에는 그렇게 만들수 없었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2D로 진짜 3D처럼 회전시에도 부드럽게 스크롤 되는 던전RPG를 만들려고 한 것이다.

90년에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9개월짜리 단기 프로젝트였지만 기술적 문제로 계속 연기 되기 시작했고 이 게임에 모든 역량을 쏟아 붇느라 그동안 제대로 다른 RPG를 만들수도 없었다. 그런데 92년에 진짜 3D 던전RPG인 울티마 언더월드가 나오면서 이 프로젝트는 이제 더이상 아무런 가치가 없어진거나 마찬가지였는데도 병신같이 계속해서 프로젝트를 진행해 버리는 큰 실수를 하고 만다.

프로토타입이 예상보다 인상적이자 점점 욕심이 커져갔고 시간이 지날수록 프로젝트의 규모는 방대해져갔다. 몇명으로 시작했던 제작진이 나중에는 200명으로 불어났고 풀모션 비디오까지 동원해 제작비는 기하급수적으로 뛰기 시작했다. 기다리던 팬들의 기대는 점점 커져갔고 인터플레이는 그동안 번 돈을 여기다 다 쏟아부었기에 그만둘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이 되고 말았다. 마침내 사활을 건 이 대작은 스톤키프라는 이름으로 95년에 발매되었다.

결과는 끔찍했다. 이미 FPS가 판을 치고 울티마 언더월드가 나온지가 옛날이고 엘더스크롤 같은 게임이 있는 상황에서 부드럽게 스크롤이 된다고 하지만 던전마스터 스타일은 엄청난 시대착오적 뻘짓이었다. 단지 외적인 형식뿐만 아니라 게임내의 컨텐츠도 도저히 RPG명가인 인터플레이가 목숨걸고 만든 게임이라고는 볼수가 없었다. 그 옛날 던전마스터 보다도 못한 그냥 그저그런 평범한 게임이었다. 상업적으로도 완전 실패를 했고 지금이 어떤 시절인데 이딴걸 만들었냐고 온갖 욕이란 욕은 다 들어 쳐먹었다.

스톤키프같은 평범한 게임을 만드는데 5년이 걸렸지만 이후 폴아웃 같은 걸작을 2년만에 만든것을 보면 스톤키프만 없었어도 그 기간에 인터플레이는 꾸준하게 좋은 RPG를 만들었을 회사였다. 결과적으로 스톤키프 때문에 90년대 중반을 그냥 쌩으로 날려버린 뻘짓을 한 것이다.

인터플레이에게 있어 스톤키프는 저승사자나 마찬가지였다. 스톤키프의 실패로 회사는 재정적으로 휘청거렸고 이후로 질높은 RPG를 만드는데는 별 관심이 없이 돈, 돈 오로지 돈만을 외쳐대는 전형적인 게임 퍼블리셔로 돌변했다. 다음 작품인 폴아웃으로 겨우 목숨을 연명할수 있었고 발더스 게이트의 커다란 상업적 성공이 없었으면 그대로 무너졌을수도 있었다.

아마데우스... 아니 인터플레이의 레퀴엠

그동안 RPG를 이끌어오던 가장 대표적인 4개의 제작사가 이렇게 여러가지 사정으로 예전처럼 빠르게 게임을 출시할수 없었으니 당연히 90년대 중반 RPG의 공백기가 생길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코 RPG가 안팔려서 안나온게 아니고 RPG가 죽은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이 시기야 말로 번데기가 나비가 되기위해 허물을 벗는 고통을 겪듯 RPG가 새롭게 한단계 더 도약하기 위한 진통의 시기였는데 성질급하고 멍청한 게임 저널리즘 전반은  RPG 사망 선고를 내려버리고 게이머들은 앵무새처럼 RPG가 죽었다고 떠들어 댔으니 이 어찌 개좆같은 상황이 아니었겠는가.

사실 3D 기술을 이전부터 가지고 있던 회사들은 오히려 이 시기에 물만난 물고기처럼 RPG를 만들고 있었다. 루킹글래스는 꾸준하게 울티마 언더월드를 발전시켜갔고 원래 RPG제작사가 아니었던 베데스다는 94년에 아레나, 96년에 데거폴을 출시했고 다이나믹스도 크론도의 배신자와 안타라의 배신자를 만들었다.

90년대 중반하면 특히 엘더스크롤 시리즈를 빼놓을수가 없는데 이 엘더스크롤 시리즈야말로 그동안의 모든 RPG의 발전상을 한꺼번에 집약해서 발전시킨 토탈패키지나 다름없었다. 그동안 명작 RPG들은 던전,퀘스트,룰 이라는 3가지 커다란 특징을 계속해서 발전시켜 왔지만 그중 어느 한가지나 두가지 정도를 중점적으로 사용했을뿐 3가지 특징 전부를 모두 구현한 게임은 없었다. 보통 던전RPG는 비선형 퀘스트 쪽이 약했고 퀘스트RPG는 던전쪽이 상대적으로 약했다.

그러나 베데스다의 데거폴은 위저드리같은 미칠듯이 빡치는 던전뿐만 아니라 울티마 식의 가상세계 구현에 스토리를 중시하는 비선형 퀘스트구조까지 가졌고 웨이스트랜드 뺨치는 복잡한 TRPG식 룰까지 포함시켰다. 그것도 모자랐는지 로그라이크의 랜덤생성 요소를 게임 전반에 도입해 엄청난 숫자와 크기의 맵, 던전, 도시, NPC, 퀘스트등등 지금까지 RPG가 거쳐온 모든것을 한 게임안에 구현하면서도 각각의 요소가 적당히 타협한게 아닌 아무도 시도한적이 없을거같은 극단으로 치닫는 코어함으로 구현해버린 것이었다! 그것도 무려 3D로!!! 겨우 96년도에!!!!!! 으아아아!!!!!!!!!!!

그건 정말로 미친짓중의 미친짓이었다. 목표가 너무나 무모했기에 버그는 그 어떤 게임도 감히 범접할수 없는 수준이었고 밸런스같은건 애초에 조절할수도 없었다. 게임이 너무나 방대했기 때문에 짜임새같은건 개나 줘버렸고 군데군데 엉성함은 이루 말할수가 없었다. 그래도 난 데거폴이 CRPG의 결정판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버그때문에 중간에 때려쳤지만 아직도 데거폴보다 더 야심적인 게임을 본적이 없고 데거폴이야말로 CRPG가 향했어야 할 올바른 방향이었다고 생각한다.

미친짓 of 미친짓, 그러나 위대했던 미친짓

루킹글래스와 베데스다야말로 고전 3대 RPG의 유산을 물려받아 90년대에 RPG를 새로운 단계로 이끌었던 진정한 후계자들이었고 RPG는 결코 죽지않고 발전해 나간다는 희망을 안겨준 쌍두마차였다. 이런 위대한 제작사들을 두고 어떻게 감히 90년대 중반이 RPG가 죽었던 시기라고 주장할수 있단 말인가. FPS처럼 갯수만 많이 나오면 장땡인가? 그당시 그렇게 쏟아져 나오던 FPS중 둠과 듀크뉴켐3D 말고 현재까지 기억되는 게임이 있기는 한가? 90년대 중반 흥했다는 FPS보다 오히려 죽었다는 RPG에서 더 의미있는 게임이 많았다. 어디 내 앞에서 90년대 중반에 RPG가 죽었다는 개소리를 다시 한번 해보라고!!!

그러나 이 개소리는 그 다음의 개소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바로 발더스 게이트가 죽었던 RPG를 부활시켰다는 개소리이다.

그것이 왜 개소리냐면...

그건 다음 이시간에...

댓글 29개:

  1. 데거폴을 처음 접했을 때의 충격은 참 컸습니다. 그런데 데거폴의 던전은 많고 크기만 했던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게임 시작할 때 탈출해야 하는 던전이 제일 두근두근하고 신비로웠고 나머지는 그저 그렇더군요. 랜덤생성 때문인지, 퍼즐적 요소랄까.. 탄탄히 설계된 맛은 거의 없었던 듯 합니다. NPC, 도시, 퀘스트 등도 약간만 플레이 하고 나면 다 거기서 거기였고. 제 친구는 울티마6랑 데거폴을 동시에 플레이 했었는데, 하면서 울티마6가 왜 위대한지 알겠다고 말하며 데거폴을 때려치기도 했지요.

    그나저나 주인장님과 같은 게이머가 아직 남아 있다는게 더 신비롭군요. 이제 다 떠나고 없는 줄 알았는데. 아직 어딘가 지하에 숨어 외로이 생존해 있는 동지들이 좀 있었던 듯?

    다음 발더스게이트 편도 기대가 되는군요. 남들은 다 재밌다고 하는데 난 왜 재미없을까 컴플렉스를 많이 느꼈던 게임이거든요. 그 재미가 뭘까 궁금해서 발더스게이트1,2, 아이스윈드데일1,2, 플레인스케이프, 네버윈터1 까지 해봤지만 끝내 못 찾고 허무함만... 차라리 아이스윈드데일의 핵앤슬래시가 제일 재밌더군요. 어디가서 재미없다고 하소연도 못했는데, 주인장님 때문에 한 풀을듯?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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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amekid / ㅎㅎ 저같은 게이머가 남아있는게 신비롭기까지 한가요? 다들 떠나는데도 끝까지 게임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다보니까 지금까지 오게 됐네요. 근데 사실 이제는 저도 희망을 완전히 버린거나 마찬가집니다. 할만한 게임이 꾸준히 나와주고 있었다면 이런 뻘글 쓸 시간도 없었겠지요. ㅜㅜ

    발더스게이트는... 예전부터 서양RPG를 하던 사람들이라면 재미없는게 당연하죠. 저도 인피니티 엔진 쓴 게임 중에서는 아이스윈드데일을 제일 높게 칩니다. 아아... 저같은 분이 여기 한분 더 계시는군요. 반갑습니다. ㅠㅠ

    데거폴 던전은 랜덤생성 때문인지 저도 퍼즐이나 함정같은게 없었던걸 참 아쉬워했던 기억이 납니다. 대신 엄청난 규모로 한번 들어가면 몇시간을 헤메게 만드는 무시무시함이 있었죠. 제가 데거폴 던전에서 참 맘에 들었던 점은 던전을 끝까지 샅샅이 뒤질 필요가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중간에 목적만 이루면 그냥 바로 나와버렸죠. 그게 뭔가 상당히 현실적인 느낌을 주더군요.

    짜임새에 있어서는 던전이든 마을이든 정말 엉성한 게임이었죠. 울티마6같은 거랑 비교하면 이뭐병소리가 절로 나오겠죠. 근데 저는 그런 세세한 부분보다 게임의 전반적인 디자인에서 그동안의 모든 CRPG의 주요한 특징들을 다 쳐넣어서 만든것 같은 시도가 참 좋았습니다. 마치 울티마1이 너무나 엉성했지만 거기서 시작해서 위대한 게임이 되었듯 데거폴이 그 엉성함에도 불구하고 CRPG가 나아갈 미래의 주춧돌이 되기를 원했었습니다. 그래서 모로윈드가 룰적인 면에서 너무 간소화 되어 나왔을때 참 실망이 컷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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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데거폴을 중반까지는 정말 재밌게 했습니다. 미칠듯한 던전의 난이도와 반복되는 퀘스트의 단조로움, 버그 때문에 포기하긴 했지만. 적어도 중반까지의 몰입감은 최고였던 것 같습니다. 공간 낭비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지만 게임 방식은 의외로 빠르고 간결해서 재미있게 즐겼던 것 같습니다. 후속작인 모로윈드는 그 점에서 좀 실망스러웠습니다. 스케일이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긴장감이나 압도적인 분위기 연출 등 여러 면에서 오히려 떨어진 것 같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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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익명 / 비록 랜덤생성에 의한 비슷한 패턴의 반복이지만 그 엄청난 규모가 게임플레이를 완전히 바꿔버렸죠. 다른 RPG는 모든 마을에 들러 모든 NPC를 만나고 더이상 다른 대사가 안나올때까지 모든 대화문을 봐야했지만 데거폴은 규모가 너무 커서 그게 아예 불가능하니 필요한 마을만 가서 필요한 NPC만 만나고 원하는 대화만 하게 되더라구요. 울티마에서 이것저것 물건 옮기고 작동하고 하는것도 현실감 있었지만 데거폴의 그 방대한 규모가 주는 특유의 현실감이 굉장히 인상깊었습니다.

    모로윈드는 남는 부분이 없이 모든게 꽉 짜여져 있어서 데거폴처럼 자유롭게 막 플레이 할수가 없었죠. 세계의 짜임새야 모로윈드가 압도적으로 뛰어나지만 데거폴의 그 잉여로움이 넘치는 방대함이 이어지지 않은것도 아쉬운 점이었죠. 던전의 분위기도 데거폴이 훨씬 무시무시했죠. 왜 이후 시리즈에서는 그 끔찍한 괴물소리를 안넣는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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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열심히 또 잘 봤습니다.
    엘더스크롤 시리즈가 나올 당시는 고등학교 시절이었고 대학교 가서는 또 딴 짓으로 바빠 게임에 눈을 돌릴 여유가 없었는데 이런 일들이 일어 나고 있었군요. 나중에 - 기약은 없어도 - 엘더스크롤에 한번 손을 대고 싶어지는 마음을 불러 일으키는 글입니다. ^^ 사실, 실시간 3D 던젼 RPG는 한번도 플레이해본 적이 없어 어떤 플레이감각으로 진행될지 오리무중입니다. 잡지 부록으로 MM6가 딸려왔길래 한 30분 정도 플레이해봤는데 딱 느낌이 안와서 그만 뒀던게 전부랄까. 고질적 멀미증세도 이쪽 계통 게임들에 선뜻 손을 가지 않게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나저나 주인장의 데이어스엑스 2편 리뷰를 보면 어지간한 버그에는 꿈쩍도 안하시는 분같은데, 그런 분이 버그로 플레이를 그만두셨을 정도면 도대체 대거폴의 버그는 어느 정도인가 싶어 덜덜이네요. 아레나는 어떤 지도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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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오스틴 / 3D멀미가 있으시군요. 많이 하다보면 없어지실 겁니다. 특히 RPG의 경우는 FPS보다 속도도 느리고 급격한 방향 전환이 덜해서 익숙해지기에 좋을거 같네요. 저는MM6은 다 좋았는데 전투가 너무 맘에 안들어서 중간에 포기해 버렸습니다. 초반에는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레벨좀 올라가니까 완전 실시간 슈팅게임이 되버리더군요. ㅡㅡ; 턴제로 할때보다 실시간으로 도망다니면서 활이나 마법쏘는게 월등하게 유리하니 게임할 맛이 안나더라구요.

    데거폴은 버그패치가 다 나오기 전에 했던게 아닌가 싶습니다. 세이브파일의 로딩이 안되는 황당한 경험도 해보고 중요한 퀘스트 아이템이 없어지기도 하고 그랬던 기억이 나네요. 아마 최종패치까지 다 된 상태에서는 이런 심각한 문제는 없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레나는 플레이를 못해봐서 제가 뭐라고 할수는 없는데 대체적으로 비슷한 게임인거 같습니다. 다만 던전에 있어서는 전부 직접 손으로 만든거라 데거폴보다 더 짜임새는 있겠죠. 대신에 룰적인 부분은 좀 부족한거 같더군요.

    저 스스로는 제가 버그에 그렇게 관대한 게이머라고는 생각을 안합니다만 다른사람들이 보기에는 관대해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근데 저는 정말로 버그로 유명한 게임들 중에 진짜 문제있는 버그를 만나본적이 거의 없습니다. 데거폴같은 경우가 예외긴 한데 그것도 제가 패치를 안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구요. 아마 제 게임 습관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게임하기 전에 최대한 패치 찾아서 먼저 깔고 한글판이나 크랙처럼 제작자 이외의 사람들이 손댄 것들도 피하고 게임플레이도 최대한 뻘짓 안하고 게임의 의도대로 진행하려고 노력하는 습관이 버그를 만날일이 적게 만든건지도 모르죠.

    그리고 데이어스엑스2는 하는동안 버그를 만난 기억은 없군요. 현재 제 블로그에 리뷰로 올라있는 게임중에서 버그를 만난 게임은 블러드라인즈 밖에 없는거 같네요. 그것도 아주 사소한거라서 리뷰에 언급도 안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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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하하... 점점 길어지네요.
    매번 즐겁게 보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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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ㅇㅁㅂ2 / 아마 6부쯤에서 끝날거 같습니다. 맘 같아서는 그냥 한번에 쫙 쓰고 싶은데 집중력이 딸려서 매번 비슷한 분량으로 끝나는군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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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윈트] 계속해주세요.ㅎㅎ 애독자의 외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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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신기한이야기들이 많네요
    세계관이.어쩌고하는 스토리얘기도 아니고
    계산된반전이나 그래픽얘기도아닌
    가장 순수하게 게임성을 보는거같군요 ㅋ
    보아하니 게임에대한애정이 깊다만
    여차하면 가차없이 게임을 까기도하시는균요 ㅎ
    요즘들어서 좋은게임이 안나온다는말엔.....
    아, 저는 모르겟네요 콜옵6을 재밋게한지라 ㄷㄷ저한텐
    버리는게 rpg게임이라.... ㅈㅅ
    (지금도 온라인rpg는 지겨워서못해여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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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익명 / ㅎㅎ원래 RPG는 액션게임하고 상극인 장르니까요. 액션게임 대하듯 RPG를 하면 재미가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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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ㅋㅋㅋ 아레나와 대거폴... 미친듯이 강한 경비병 밤이되면 도움도 청할 수 없는 마을에 왠 괴물들이 돌아다니지 않나. 당시 공략도 없어서 넓은 벌판을 헤매다가 GG치고 때려친 기억이 떠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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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익명 / 경비원하니까 Halt! Halt! 하는 소리가 억!억!억!억! 하는 소리로 들려서 참 무서웠던 기억이 떠오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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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저는 최근에 시작한 장르가 비행시뮬인데 이거 원, 너무 어렵더군요. 팔콘은 매뉴얼이 수백페이지가 넘어가더라구요. dcs도 마찬가지더인데 이건 오히려 게임안에 실시간 동영상으로 만들어진 튜토리얼이 더 도움이 되던데 영어가 안되면 정말 힘들거 같더군요. 아기 걸음마 한다는 생각으로 조금씩 조금씩 도전해 보고 있는 장르인데, 언제 익숙해질지 감조차 안와요; ㅋㅋ 원래부터 이렇게 어려운게임이었나하고 유투브에서 도스시절 비행시뮬게임 영상들을 찾아보니 무지하게 낮은해상도에 뚝뚝 끊기는 프레임에 매우 간략한 비행물리엔진과 에비오닉스의 게임들이 많이 있더라구요. 이런 간단한 것들이 변해서 지금 수준의 비행시뮬이 되었다는게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론 좀더 일찍 이런게임들을 알았다면 비행시뮬을 좀더 쉽게 접근할 수 있을텐데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데거폴의 경우는 이 게임도 저는 상당히 늦게 접했는데 2004년도쯤에 고전게임사이트를 둘러보다가 입소문과 명성을 듣고 vdmsound였나 도스박스의 도움을 받아서 구동했던 기억이 나네요. 도트가 팍팍튀는 그래픽에도 불구하고 처음시작했을때 반나절이 훅~ 갔던 기억이 나요. 저녁쯤되면 마을 어귀에서 "벤젼스~"하는 유령때문에 오싹했던 기억이.. 던전에서 스켈레톤의 울음소리도 상당히 그로테스크 했던걸로 기억합니다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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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익명 / DCS시리즈 같은 경우는 완전 꿈의 실현이죠. 도스시절엔 그런게임을 꿈꾸기는 했지만 그게 정말로 실현되리라고는 믿지 않았어요. 진짜로 실제 군용시뮬 수준이 되어버렸으니까요. 어떤 사람들은 시뮬레이션 장르가 도스시절에 비하면 죽은거나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도스시절부터 비행시뮬을 했지만 그당시 수준의 비행시뮬이 계속해서 1년에 몇개씩 출시되느니 DCS같은 게임이 제 평생에 단 한개라도 나오는 쪽을 선택하겠어요. 뭐든지 정점을 향해가면 갈수록 공급자든 수용자든 점점 소수가 될수밖에 없거든요. 많이 나오기만 하면 뭐해요. 발전이 있어야 그게 살아있는거죠. 그런면에서 RPG는 이제 아무리 많이 나와봐야 죽어버린 장르예요. 발전은 커녕 현재 나오는 RPG들이 수십년전 도스시절보다도 질이 떨어지니까요. DCS같은걸 보면 결국 게임의 질은 시장의 크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걸 깨닫게 됩니다. 비행시뮬은 가장 마이너한 장르였지만 다른 어떤 장르도 이르지 못한 정점을 찍고 있죠.

    저도 데거폴은 초반부터 완전 뻑갔었습니다. 처음 던전 나와서 맵을 켜니 보이던 그 수많은 점들...^^; 꼭 엔딩보고 싶은 게임중에 하나였는데 윈도우 상에서 실행하기가 정말 거지같은 게임중에 하나였어요. 도스박스 덕에 이제는 아무 문제없이 돌아가는것 같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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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욕나와요....물론 늦게태어난것도 죄이겠지만
    93년도부터는 저도 게임을 살살 만질수있었지만(초3)
    겨우 안영기선생의 데자뷰나 워크래프트2를 하거나
    커맨드앤컨쿼를 했군요.....
    나중에안사실입니다만 저희집엔 크론도의배신자가 있었답니다. 아버지가 대우IBM에 다니셨기때문에....
    그런명작을 알아보지도못하고 썩히다가 발견했을때는
    이미 플로피가 맛이가있더군요 ㅠ_ㅠ
    메뉴얼을읽으면서 아 정말 재밌겠다 꼭 하고싶다 싶었지만
    지금은 결혼과 잦은이사로 메뉴얼을 상실하고....
    한달전쯤부터 크론도의배신자를 얻듯 어디서 읽고
    아 그래 이게임을 다시 하고싶다 하고 인터넷을 뒤지고다닌답니다
    위에 글을적으신 수많은분들처럼 주옥과도같았던
    (그래픽은 열악해도 게임성이 좋은)
    그런 게임들을하고싶네요 ㅠ_ㅠ
    저도 중학생때 사전을 손에들고 울티마온라인을 했었더랬죠 ㅇ_ㅇ;;; 정말힘들었지만 정말 죽이는게임이라고생각했음 정말 왜이렇게 게임성좋은 게임들은 대부분 영어지...
    왜한국어는 이런게임없지 ㅠ_ㅠ
    그리고 이렇게 그래픽이좋은게임은 요즘 많은데 왜 예전처럼 게임성 좋은게임은 드문지...
    드문건지 없는건지도 이젠 잘 모르겠음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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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익명 / 저는 게임에서 한글은 아주 어렸을때부터 포기했기 때문에 그런 아쉬움을 크게 느껴본적은 없었죠. 한글보다는 그래픽에 대한 아쉬움이 컸습니다. 근데 그래픽이 발전하니까 게임성이 후져지더라구요.ㅠㅠ 두마리 토끼를 잡을순 없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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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정말 잘 배우고 있습니다. 당시 90년대 중반부터 RPG의 거장들이 시대 트렌드를 왜 못따라가는거지? 라는 의문이 계속 들었는데 당시의 3D 기술력은 상당한 차이가 있었던 거군요. 울티마 언더월드의 충격이 이 정도였을 줄이야... 그래서 아레나가 그렇게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거구요. RPG에 3D를 넣는 기술은 첨단기술이었던 것이었군요. 그리고 지금 생각해도 데거폴의 규모와 혁명적인 시도는 놀랍습니다.(전 잠깐 하다가 너무 방대하고 산만해서 때려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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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silvermoom / 90년대 중반엔 원래부터 RPG만들던 회사는 3D로 RPG를 만드는게 거의 불가능했던 반면 원래 3D액션이나 시뮬게임 만들던 회사(다이나믹스,베데스다)가 최초로 3D로 RPG를 내곤했죠. 그런거보면 그당시 3D구현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짐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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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본문이 감명 깊군요.

    여기 나오는 게임들을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제가 아는 내용을 약간만 보충하겠습니다.

    위저드리8은 개발사인 Sir-Tech이 1999년 10월에 파산해서 Sir-Tech Canada가 이어받고 쫓기듯 출시한 프로젝트입니다. 게임 종료시 나오는 광고가 재정난을 보여주죠(유럽 패키지는 광고 나오지 않는다고 하네요).
    즉 위저드리7에서 9년이 지나도록 완성을 '못한' 상태에서 출시한 겁니다. 다만 위저드리의 RP 시도는 개인적으로 높게 칩니다. (보이스셋마다 고유의 대사가 있죠.)

    대거폴은 마지막 공식 패치 2.13을 설치해도 퀘스트가 막히거나 세이브파일 손상이 일어납니다. 이유를 몰라서 피하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팬이 만든 패치도 상당히 많고. 세이브 파일을 반드시 최대한 많이 확보하셔야 합니다.
    (제 생각엔 대거폴의 버그는 미리 알고 피해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많은 게이머도 아마 동의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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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N. / 위저드리8에 대해 제가 알기로는 완성을 오래전에 했지만 퍼블리싱 해주는 회사가 없어서 그냥 계속 손만보고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듣도보도 못한 회사가 퍼블리싱을 했었죠. 오래 손본 탓인지 처음부터 버그가 별로 없기도 했구요. 대거폴은 패치를 다 해도 심한 버그가 남나보네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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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당시에 스톤키프 출시되자마자 사서 즐겼던 1인입니다.
    스톤키프가 그 자체만 놓고 보면 그렇게 나쁜 물건은 아니었어요.
    풀 모션 비디오에 라이브 시네마틱, 패키지에 동봉된 배경 소설이나 세계관 등을 보면 이 게임이 지향하려는 바는 분명합니다. 상상력의 필터링을 그나마 덜 거친 생생한 던젼탐험 체험을 하게 해 주려는 것이고, 이건 어느정도 성공적이었다고 봅니다. 이 게임이 느끼게 해주는 묘한 긴장감과 일체감은 나름대로 독특한 일가를 이루었거든요. 이런건 아마 The Eidolon 이후 처음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요. 최신 엘더 스크롤 시리즈들에서도 느끼기 힘든 것들이었죠. 젠장 이 코너를 돌면 또 뭐가 나와서 나를 아프게 할까 하는 기분?
    실제로 이 게임이 혹평만 받았던 건 아니고, 호평도 꽤 있었죠. 단 그런 리뷰에서 항상 강조하는 것은 역시 'thrill' 이에요. 정통적인 RPG 문법으로 좋은 게임이라고 하기보다는, 당시 3DO 쪽에서 노리던 것들을 함께 추구하던 던젼 탐험 게임이라고 보는 것이 맞겠죠. 제가 예로 든 The Eidolon도 rpg가 아니고요.
    다만 제작기간이 너무 오래 걸렸기에 왠만한 상업적 성공으로는 커버할 수 없는 구멍이 된 것은 맞는데, 다행히 폴아웃과 발더스 게이트 덕분에 인터플레이는 생명연장의 꿈을 이뤘죠.
    더욱 무서운 것은 이 게임의 속편도 블랙아일에서 약 5년 정도 제작하다가 IWD2에 집중해서 마무리하기로 결정하면서 포기했다는 사실. 이 게임은 기본이 5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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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블로그 잘봤습니다.rpg의 역사를 보니 진화 생물학자 스티브 제이 굴드가 생각나는군요.진화란 좋은것도 아니고 복잡성이 증가하는 것도 아니다는 것.그저 환경에 적응한 변화라는 측면에서 아메바야 말로 진화의 정점에 이른 생물일지 모른다죠 ㅋ 하지만 거대자본에 휩쓸린 블록버스터만이 아닌 쥔장 취향의 게임들도 나왔으면 싶네요. 모로윈드 갈길몰라 포기했었는데 포스트들 보니 다시하고 싶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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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ㅎㅎ 대거폴을 너무 과대평가하는건 아닌가 싶어요.
    사실 스토리 진행은 매우 선형적이고 그저 마지막에 딱하나 선택하는게 있는 정도라
    비선형성을 구현했다 보긴 힘들지 않을까 싶어요.

    대신 저는 대거폴을 하나의 세계 구현을 RPG로서 가장 큰 목표로 접근했다고 보긴 하지만요.
    뉴베가스가 팩션시스템으로 호응을 얻고 그게 폴2에서 왔다 하는데 저는 대거폴쪽이 더 가깝지 않을까 해요. 폴2는 이게 팩션이 있더라도 그냥 그 지역에서만 통용되니 그런 팩션의 사용이 좀 제한적이었다 생각해요. 그래도 대거폴이 더 가깝지 않나 싶어요.
    거기에 직위에, 계층간의 호감도에 등등 진짜 세계를 구현하려는게 목표였다 생각해요.
    모로윈드는 좀더 디테일하게 세계를 구현하고 스토리도 설정도 가다듬은건 좋긴 한데..
    돌아보면 그런 세계를 표현하겠다는게 약해진거 같다는 느낌도 들어요. 좀더 시스템적으론 좀 간략해졌다는 느낌이 듭니다. 오블리비언 와서는 그냥 죽여버리고 가죽으로 장식만 했죠.
    스카이림은 그 가죽마저도 썩어서 일부분만 있는척만 하고 실질적으론 없는거나 다름없어졌지만요.

    결론으로는 목표는 대거폴같이 잡으면 좋겠다 이겁니다 ㅎㅎ
    그래서 프론티어즈라는 킥스타터 프로젝트 올라오고 대거폴이 모델이라는 말하나만으로도
    질질 쌌죠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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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Onesin

    제 생각에 대거폴을 높게 치시는 이유가 이거 이후로 여기에 견줄만한 게임이 안나왓다는거 때문인거 같습니다. 막 다른 사람들이 시도를 안하면 그 원형이 원작으로 남게 되잖아요? 제 생각에 대거폴은 그런거 같습니다. 그렇다고 못만든 게임은 아니지만, 앞으로 나올 게임들의 스타일의 프로토타입으로 볼수 잇겟는데 문제는 저기서 더 발전한게 안나왓다는거죠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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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는 비선형부분이요. 엘더스크롤 자체가 선형적인 핵엔슬래쉬를 지향하던 게임이니
      비선형성을 좋은부분으로 보긴 좀 힘들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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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Argion / 오래되서 자세한 내용은 생각이 안나지만 선형적인 구조는 전혀 아니었던걸로 기억합니다. 우선 시작부터 아무런 목표를 주지 않았던걸로 기억하구요. 그냥 막 싸돌아다니면서 이것저것 다른거 하고 있으니까 편지를 받으면서 본격적인 스토리가 시작됐었죠. 중간 과정에서도 정해진 순서가 없는 경우가 많지않나요?
    [스포일러] 누가 데거폴의 메인퀘스트 구조를 그림으로 그려놓은걸 찾았습니다. http://www.uesp.net/dagger/hints/walkthro.shtml
    이거 봐도 전혀 선형적인 구성은 아닌듯한데요? 그리고 엘더스크롤이 핵앤슬래쉬를 지향하는 게임은 전혀 아니죠. 옛날에 RPG 많이 하던 사람들도 엘더시리즈를 핵앤슬래쉬로 보는 사람들은 없었을걸요. 핵앤슬래쉬는 그냥 완전 일직선 진행에 전투만 주구장창 하는 게임들입니다. 아이스윈드데일 같은걸 핵앤슬래쉬라고 하는거죠.

    제가 말하는 플롯의 비선형성이라는건 스토리 자체가 변한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 스토리를 따라가는 과정이 딱 한가지 순서로 정해져 있지 않다는 얘기에 가깝습니다. 단순히 스토리에 분기가 있다고 비선형적이면 미연시도 비선형적인 게임이 되버리죠.

    뉴베가스의 팩션과 대거폴의 팩션은 좀 지향점이 다른게 아닌가 싶습니다. 대거폴의 팩션은 어디까지나 월드내의 시뮬레이션적인 구현이라 팩션이 하는 일에 촛점이 맞춰져있고 뉴베가스의 팩션은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중심세력이라는 내러티브적인 목적으로 구현된거죠. 두가지가 다 결합된게 가장 이상적인 팩션구현이겠습니다만...
    제가 데거폴에 충격을 받았던것도 그런 시뮬레이션적인 요소였습니다만 단지 시뮬레이션에서만으로 그랬던게 아니라 과거의 서양RPG의 전통을 물려받으면서 그런 시뮬레이션적 지향성을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게 CRPG의 미래라고 봤어요. TRPG의 뿌리를 버리지 않고 과거의 CRPG 발전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 PC에서만 가능한 시뮬레이션이라는 장점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형태 말입니다. 뉴베가스나 앞으로 나올 웨이스트랜드2도 데거폴에 비하면 개념적으로는 구식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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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는 아레나가 핵엔슬래쉬에 가깝다 느꼈거든요. 퀘스트는 단순하고
      던전도 구조는 복잡하지만 적과 싸우기위한 통로에 더 가깝다는 느낌도 들었구요.
      대거폴의 메인퀘스트가 비선형적이긴 했네요;; 저는 이것저것 편지따라 하기만 하면
      나중에 선택하는거 빼면 딱히 어떤걸 하면 어떤게 닫히고 그런 느낌이 없어ㅓ 선형적으로 느꼈던가;;
      하지만 지향점 자체는 정말 이만한 게임은 없다고 느껴졌습니다. 모로윈드가 명작으로 선것도
      그런 대거폴의 높은 지향점이 크게 기여했다고 봅니다. 문제는 그게 갈수록 작아지더니 사라져버렸다는 거지만요...
      그런 시뮬레이선 지향점만으로는 정말 어휴...
      ㅅㅂ 스카이림 보면 정말 어쩌다 이따구로 만들어진걸까 싶기도 해요..
      확실히 저 둘의 팩션은 다른 작용이군요;; 다만 폴아웃2와 비교하면 대거폴쪽의 영향이 컸을꺼 같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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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저는 비선형적인 진행을 과대확장한건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어떤걸 먼저하느냐에 따라 다른쪽에 영향이 가고 서로 유기적으로 얽여있는걸
      비선형적인 구조로 보고싶습니다. 단순히 순서만 바꿀수 있다면 그건 별 의미가 없을거 같거든요. 외려 그런식이라면 차라리 선형적인게 나을수도 있다 생각할 만큼이요.
      선형적이라면 차라리 시간의 흐름이라도 넣기 좋잖아요.
      그런점에서 폴1의 시간제한이나 로멘싱사가의 전투횟수=시간경과의 방식이 좋다고 봅니다.
      이렇게하면 순서에 따라 서로 유기적으로 변화하는데 큰 도움을 주잖아요.

      그런점에서 대거폴은 선형적인거에 가깝다 보고 모로윈드는 비선형적인 면에선 별로라 봅니다.순서가 영향을 주는게 그리 많지 않고 영향을 주는것도 대충인데다가 인과적으로 좀 어거지적으로 해야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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