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13

웨이스트랜드를 끝내고 느끼는 황무지스러움.

웨이스트랜드도 언젠가 반드시 리뷰를 써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다시 플레이할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 게임이었다. 이제 더이상 재미가 없을거 같다던가 엔딩보기가 힘들거 같다던가하는 이유는 아니고 게임성에 대한 어떤 의구심도 남아있지 않을 정도의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그다지 재플레이의 동기를 느끼지 못해서였다. 최근 웨이스트랜드2의 소식을 접하면서 다시 해보고싶은 충동이 일어나기도 했고 킥스타터 모금이 시작되기 전에 리뷰라도 써서 한명이라도 더 참여하게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길래 다시 플레이를 하게됐다.

역시 기억하던 그대로의 게임이었다. 여전히 한번 잡으면 놓기가 힘들정도로 재밌고 놀라웠고 아드레날린을 분비시켰다. 주말동안 미친듯이 게임에 매달려 한큐에 엔딩을 보고 말았다. 이렇게 게임에 집중해서 하루가 순식간에 지나가는 느낌을 받은 적이 얼마만이었나. 내가 변한게 아니라 게임이 변한것임을 다시한번 확인했다.

그런데 즐겁게 게임을 했고 리뷰에 쓸 내용도 잔뜩 떠올렸음에도 개운함보단 왠지 모르게 자꾸 설명할수 없는 쓸쓸한 뒷맛이 남는다. 좀 거창하게 과장하면 마치 인류가 진화의 경쟁에 실패해서 지구에서 사라진 모습을 보는것 같다고 할까?

난 가끔씩 인간이라는 생물이 굉장히 신기하게 느껴질때가 있다. 지구의 셀수없이 수많은 생물종중에 복잡한 문명을 이룩할 만큼 지능이 발달한 종이 인간밖에 없다는 걸 생각할때마다 묘한 느낌이 들곤한다.

지구처럼 물리적으로 위험한 환경에서 다른 육체적 장점을 포기하면서 지능을 특화시킨다는게 생존에 전혀 도움이 될것같지가 않다. 장기적으로는 유리하겠지만 지구의 환경은 장기적인 생존을 보장해줄만큼 만만한 곳이 아니다. 당장 살아남지 못하면 영원히 도태되는 지옥같은 곳이다. 인간의 허약한 육체로는 중간에 반드시 멸종하고 마는게 당연해 보인다. 지능이 생존에 유리했으면 왜 인간만이 이 길을 선택했겠는가.

인간이 여기까지 진화를 한것이 우연의 일치라기엔 너무 운이 좋아보인다. 그래서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는 얘기는 믿겨지지 않지만 전지 전능에 가까운 어떤 존재가 개입해서 인간의 멸종을 막은것처럼 느껴지기는 한다. 물론 이건 중간 과정을 보지 못할때 인간이 전형적으로 느끼는 신비함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직관적으로는 매우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이제와서 요즘 잘나가는 게임들과 과거의 명작 PC게임들을 비교해보면 예전 명작 게임들이 분명하게 게임적으로 더 고등하다. 게임플레이를 지능으로 비유하고 그래픽이나 타격감, 직관적 인터페이스같은 게임 외적인것들을 육체적 강함이라고 비유해보면 어떨까.

지능은 바로 알수가 없다. 감각으로 지능을 느낄수는 없다. 지능은 어느정도 같이 지내봐야 드러나는 능력이다. 반면에 육체적 강함, 아름다움등은 감각으로 바로 느껴지는 것들이다. 오래 해봐야 알수있는 게임플레이보다는 바로바로 느껴지는 감각적 요소가 사람들에게 어필하기에도 빠르고 쉽다. 자연선택처럼 살아남기에 유리한 대중성을 지녔다.

그러니 웨이스트랜드같은 게임들이 게임계에서 멸종하는건 당연한 일이다. 살아남기에는 육체적으로 너무 연약하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게 자연스럽지만 지구상의 무척 예외적이고 부자연스러운 생물인 인간종에 속한 내 눈에는 너무나 안타깝고 뭔가 잘못된것처럼 보인다. 누군가 힘있는 자가 나서서라도 반드시 지켜냈어야 하는 무엇인가로 보인다. 그래서 인류가 지구상에서 문명을 꽃피우듯 그렇게 그 가능성을 활짝 펼쳐야 했을 터였다. 그것이 게임을 위한 '올바른' 길이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말이다.

댓글 8개:

  1. 참, 울티마 4도 그렇고 이번 리뷰도 그렇고, 개인 주관 잔뜩 들어간데다 보통 리뷰하면 생각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리뷰지만 읽으면서 이렇게까지 이 사람이 이야기하는 게임을 하고 싶어지는 이유가 뭘까요. 마케팅에 소질이 있으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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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세이로 / 이건 리뷰는 아니고 '자질구레한 감상'카테고리에 들어가는 글입니다. 리뷰에는 들어가지않을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감상같은걸 위한거죠. 저번 스카이림 글도 그렇고 태그가 안뜨니까 자꾸 오해가 생기네요. 아니 왜 태그 표시를 켜놔도 안뜨는지 모르겠어요. 아 좆같은 구글블로거...

    저는 리뷰는 최대한 객관적으로 쓰려고 노력합니다. 그 객관성의 기준을 사람이 아니라 게임에 맞추다보니 좀 다르게 느껴질수도 있겠네요.

    제 리뷰를 읽고 게임이 하고 싶어지면 꼭 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리뷰를 쓰는 이유가 그런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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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세이로/ 그건 글 속에 진심이 담겨있기 때문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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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익명 / 으잌ㅋㅋㅋ 닭살멘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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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너무 걱정마시길. 제가 공부한 바로는 인간은 지능도 있지만 종합적인 신체능력이 엄청나서 만물의 영장이 된 것입니다. 점프력, 스피드, 지구력, 민첩성, 근력 등이 하나하나는 별 볼일 없지만 이렇게 종합적으로 우수한 종은 인간 밖에 없다고 합니다. 이야기가 좀 다른 길로 샛는데 게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의 명작들이 현대의 경향에 맞지 않다고 모두 도태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리메이크와 킥스타터가 시작되는 것이지요. 현재의 문화요소들이(게임, 음악 등등) 이미 새로운 요소들에 한계를 보이고 있어 과거의 기술력으로 구현 못한 내용이나 아이디어를 재조명하여 작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기존의 소스들의 짜집기나 부분적 활용에 불과한 것이 대부분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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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silvermoom / 안그래도 요즘 킥스타터 때문에 게임라이프가 굉장히 즐거워졌습니다. 지난 10년간 이렇게 게임이 즐거울때가 없었습니다. 희망을 버린지 몇년이 됐는데 뜬금없이 희망이 생겨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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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껍질인간/ 굉장히 즐거워졌던 그 시기를 지나서 이젠 그 게임들이 나왔고, 그 게임들의 후속작이 나오는 시대인데 더 이상 글은 쓰시지 않으시는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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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오랫만에 들어와서 다시 여기저기 글 보고 있습니다.
    멋진 리뷰도 많지만 그 이외에 이런글더 정말 멋지네요

    언잰가는 게임계의 고등지능생물이 다시 돌아올 날을 기다려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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