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7/10

퓨처워즈 (Future Wars)

발매년: 1989
제작사: Delphine Software
유통사: Palace Software
플랫폼: Amiga (DOS)

난이도 설정: 없음



퓨처워즈의 제작사인 델핀 소프트웨어는 당시의 PC게임계에서는 보기드문 유럽 제작사였다. 이때부터 액션과 어드벤쳐의 융합을 꾸준히 실험하던 나름 선구적이었던 이 회사의 가장 인상깊었던 작품은 어나더월드라는 어드벤쳐성 액션 게임이었는데 시작부터 끝까지 말한마디 없이 오로지 눈빛(;;;)과 액션만으로 스토리를 전개시키는 당시에는 무척 특이한 게임이었다. 그러나 이 게임이 강한 인상을 남겼던 부분은 게임플레이나 스토리가 아니라 멋진 아트웍과 연출로 만들어진 '분위기' 였다. 마치 자신들이 프랑스 출신임을 강조하듯이 모든 역량을 미술에 쏟아부은듯 했다.

동사가 어나더월드 이전에 만들었던 포인트앤 클릭 어드벤쳐 게임인 퓨처워즈 또한 마찬가지로 미려한 도트 그래픽으로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해낸다. 그러나 어나더월드가 나름 괜찮은 게임플레이로 분위기에 한껏 빠져들게하는 힘이 있었다면 퓨처워즈는 분위기에 빠져들려고 해도 게임플레이의 엉성함 때문에 산통이 깨진다.

인트로가 끝난후 나오는 첫 화면부터 좋은 예가 된다. 거대한 도시가 전면에 비치는 고층빌딩의 한 중간에 홀로 매달려있는 주인공의 이미지가 무척 인상적이라 뭔가 앞으로 진행될 이야기에 대한 미장센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 아찔한 높이의 고층빌딩 바깥에서 뭔가 아슬아슬한 액션이 벌어질것같은 기대감도 든다. 그러나 그건 그냥 아무의미도 없는 한장의 그림이었을 뿐이라는걸 창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는순간 깨닫게 된다.

이처럼 만들어진 시기를 감안하면 대단히 인상적인 그림들이 몇몇 등장하는데 기막힐정도로 무의미한 장면에서만 골라서 나타나니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그냥 한번 지나가는 쓸데없는 컷신이나 아무퍼즐도 없이 한번 쓱 지나가면 땡인 배경따위에는 엄청난 공을 들인 도트그래픽을 보여주는 반면에 정작 퍼즐을 풀기위해 오랜시간 머물러야 하는 장소는 반대로 인상적인 그림이 없고 심지어 풀스크린조차 아닌 코딱지만한 그림일때가 더 많다. 상식적으로 퍼즐을 풀기 위해 오래 머무는 장소에 더 좋은 그림을 배치하는게 당연할텐데 이 게임은 공들인 그림들의 배치가 상당히 뜬금없다.

퍼즐이라도 좋으면 그런 그림들이 좋은 분위기를 만드는데 도움을 주겠는데 안타깝게도 이 게임의 퍼즐은 대부분 길을 막는 방해물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사실 퍼즐 자체는 대부분의 포인트앤클릭 어드벤쳐의 공식과 별 다를바가 없는 평범한 구성이다. 문제는 공간의 구성이다. 퍼즐이 진행되는 공간을 지나치게 좁히고 순차적으로 구성해서 좁은 하나의 장소에서 하나의 퍼즐을 풀고 다음 장소로 이동해 또다른 별개의 퍼즐을 푸는, 완전히 선형적인 구성으로 게임 전체가 진행된다.

퍼즐을 풀기위해 여러장소를 돌아다녀야 한다거나 하나의 퍼즐이 여러개의 다른 퍼즐과 맞물려있다던가 하는 비선형적 요소가 전혀 없기 때문에 퍼즐의 난이도가 엄청나게 낮아졌다. 안그래도 포인트앤 클릭 어드벤쳐라 명령어에 변수가 별로 없는데 장소까지 제한되어 버리니 아무리 기발한 퍼즐이라도 경우의 수 자체가 몇개 없어서 마우스 몇번 클릭하다보면 답이 저절로 나올수밖에 없는것이다. 경우의 수가 적어서 생기는 이런 난이도 저하를 보충한답시고 인터렉션 지점을 찾기 힘들게 만들어 '픽셀헌팅'을 유도하는 병신같은 짓을 했는데 다행이도 그래픽 자체가 워낙 깨끗한 스타일이라 그냥 눈으로 잘 보기만 해도 쉽게 찾아진다.

유일하게 퍼즐이 문제를 일으킬때는 이전 장소에서 필요한 아이템을 빼먹고 다음 장소로 이동한 경우이다. 지역 구조가 한번 이동하면 다시 돌아갈수 없는 구조라서 아이템을 빼먹으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수밖에 없다. 따라서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전에 최대한 샅샅히 뒤져서 뭔가 있을것 같은곳은 빠짐없이 체크해야 한다. 워낙 게임이 선형적이라 한번에 신경쓸 공간이 많지 않고 내용도 그다지 길지 않은편이라 다시 시작한다고 해도 크게 빡치는 일은 별로 없는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이렇게 퍼즐을 포기하면서까지 지역의 이동을 선형적으로 만든 이유는 순전히 스토리 전달을 위해서이다. 어드벤쳐 장르가 본격적으로 스토리 위주의 선형적인 진행이 되기 시작한 시점은 90년 전후부터였고 이 게임도 그 흐름을 만드는데 일조한 작품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어떤 스토리 위주의 어드벤쳐게임 보다도 선형적인 주제에 스토리의 전달방식이 끔찍한 수준이라는게 개그다.

텍스트가 별로 나오지 않고 그림만 나올땐 앞뒤가 어울리지 않는 미스테리한 장면으로 인해 나름 쇼크를 선사하면서 스토리에 기대감을 갖게 하기도 한다. 예를들면 평범한 사무실에서 별 설명도 없이 갑자기 SF틱한 비밀공간이 나온다던가 하는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실컷 그림으로 호기심을 부풀려놓고는 막상 중요인물을 만나서 텍스트가 나오기 시작하면 마치 초등학생이 쓴것같은 수준낮은 대사와 진부한 스토리에 기대감은 산산히 부서진다. 마치 입을 다물고 있을땐 지적이고 신비스러워 보이는 미녀가 입을 열자 "안냐떼염? 나 예쁘긔?" 이런 말들이 막 쏟아져 나오는것같은 느낌이다.

스토리 자체는 44세기의 먼 미래부터 백악기까지 종횡무진하며 인류 역사에 대한 타임 패러독스를 가미하는등 엄청난 스케일을 보여주는데 등장하는 캐릭터나 스토리 진행상 어디를 봐도 코믹한 요소는 전혀 찾을수가 없다. 그런데 대사나 고유명사등에서 튀어나오는 스타워즈, 스타트렉 등의 말장난 개드립과  전혀 어울리지도, 웃기지도 않는 유치한 개그들이 그동안 힘들게 잡아놓은 분위기를 완전히 망쳐놓는 것이다. 안그래도 스토리에서 중요한 부분들은 전부 자동으로 진행되는 컷신과 직접적인 설명으로 때우는 나태함을 보여주고 있는데 스토리상 진지한 상황에서 "햏햏햏 땡구야 왜개인이 쳐들어왔쩌염~" 이런 수준의 대사를 치니 도무지 제작자들이 뭘 의도한것인지 종잡을수가 없어진다. 코메디도 아니고 그렇다고 진지한 SF도 아니고 이게 도데체 무슨 짓이란 말인가.

후반에 등장하는 실시간 액션 파트도 문제가 심각하다. 슈팅파트는 그나마 낫고 마지막의 6분 제한시간의 사다리 미로 찾기는 완전 쌍욕이 나오게 만든다. 6분은 그 미로를 단 한번의 실수도 없이 주파해야할만큼 빡빡한 시간이라 어쩔수 없이 시행착오를 통해 맵을 그릴수밖에 없다. 맵을 보면서 한번에 진행해도 시간이 빡빡할 지경이다. 머리가 필요한것도 아니고 반사신경이 필요한것도 아니다. 그저 고역스런 노가다가 필요할 뿐인 이따위 병신같은 실시간 파트를 대미를 장식한답시고 넣어놓았다. 초딩스런 골빈 말투와 아무런 성취감없이 고생만 시키는 뒤끝 덕분에 첫인상의 호감은 완전히 사라지고 싸대구를 후려치고싶은 분노만 남긴다.

왜  어나더월드에서 등장인물들이 말 한마디 없었는지 그 이유를 바로 이 게임을 통해 알수있었다. 이 제작사는 '그림'은 잘 다루지만 '언어'쪽에는 완전히 젬병이었던 것이다. 퓨처워즈는 제작사의 장점과 단점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작품으로, 자신들의 한계를 인지하지 못한채 스토리를 강조하는 커다란 실수를 하면서 게임의 장점까지도 완전히 묻어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의도하지 않은 쉬운 난이도와 예쁜 그래픽 덕분에 당시에는 나름 성공적이었던 모양이다. 예나 지금이나 잘만든 게임보다는 쉽고 그래픽 좋은 게임이 잘 팔리는건 변함이 없는것 같다. 하지만 그때는 최소한 그런 게임을 '명작'으로 취급해 주지는 않았다.



평가 ★☆☆☆☆

댓글 13개:

  1. 어릴때 게임월드라는 잡지에서 위 스샷에 나온 그림 한장으로 반해서 처음으로 손에 잡고 엔딩까지 본 어드벤처 게임이 되었습니다. 어차피 초딩 영어실력에 스토리란건 아웃오브안중이고, 어드벤처란 그림보는 게임이었으니까요. 폐허가 된 도시에 오도카니 서있는 저 그림은 지금에도 그렇지만 한창 게임에 빠져있던 어린시절에는 많은 감흥과 상상력을 불러일으켰죠. 허큘리스에서도 참 아름다웠어요.
    하지만 게임에 대해서는 주인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저 화면에서 해야 할일은 픽셀헌팅으로 맨홀뚜껑 찾아서 들어가는게 다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참고로...이 게임 타이틀 음악도 꽤 괜찮았던 걸로 기억합니다.(암호 입력은 좀 짜증났지만) 애들립으로 들어도 좋지만 PC스피커로 들어도 나름 괜찮은 음악을 들려줍니다. 물론 PC스피커 세대가 아니신 분들한테는 그래봤자 소음이겠지만.
    게임성으로 따지면 그때나 지금이나 좋은 평을 해 주긴 어려운 게임이지만, 저에겐 그래도 저 스크린샷 한장으로 모든 것이 용서되는 게임이네요 :-)

    답글삭제
  2. 익명 / 그래픽 어드벤쳐 게임들은 정지화상의 배경에서 진행되니 배경그림에 공을 들인 게임들이 많았죠. 게임이란게 다른 미디어하고는 많이 다르게 전체적인 질과 상관없이 아주 사소한 부분때문에 좋아하게 되는 경우가 많죠.^^; 저도 그런 게임들이 많습니다. 게임하고 무관하게 그냥 도트그래픽 한장면때문에 잊을수 없는 게임들도 있고 특정 음악이 너무 맘에 들어서 추억이 되는 게임들도 있고...
    퓨처워즈도 지금봐도 분위기있는 그림들이 나오던데 그당시에는 어련했겠습니까. 다들 질질 쌌겠죠.^^;
    음악은 처음 인트로에서 나오던 음악이 괜찮더군요. 근데 게임중에는 음악이 나오는 부분이 별로 없어서 좀 아쉽더라구요.

    참고로 댓글에 이름 넣으실려면 작성자에서 이름/URL을 선택하신다음에 회사명에 이름 넣으시고 계속 누르면 됩니다.

    답글삭제
  3. 요새 MT32 게임들 한번씩 돌려보고 있다 하시더니 퓨처워도 겸사 겸사 해보셨나 봅니다. ^^ 저도 썩 좋아하는 게임은 아닙니다만 때깔 하나는 인정해 줄만 하죠.

    답글삭제
  4. 어나더 월드 20주년 기념인가 해서 gog에서 파는거 같던데.. 가격도 gog라 무지 싸고요.

    답글삭제
  5. 어드벤처게임중에서 페넘브라라던지 암네시아라는 게임이 재미있어 보이더군요. 하지만 저는 플레이할 자금도 배짱도 없어서 포기했습니다.

    답글삭제
  6. 오스틴 / 엌ㅋㅋㅋㅋ 보셨군요. 어렸을때 mt32실기 소리를 들어본적이 있었는데 충격적이었죠. 근데 그때 들었던거랑 완전 똑같은 소리가 나오니 거짓말처럼 그시절의 느낌이 그대로 되살아나네요.ㅠㅠ



    익명 / 어나더월드도 원작 느낌을 간직하면서 FPS형식으로 부활시키면 나름 괜찮을것 같은데 별 이야기가 없네요. 원작이 일직선 진행이라 요즘 FPS 스타일에도 잘 맞을것 같은데... 오히려 FPS로 전혀 안어울리는 엑스컴 같은 게임들이나 바꿔대고... -_-;



    Argion / 저도 흥미가 가는 시리즈입니다. 그래픽이 좀 아쉬워 보였지만 재밌어보이더군요.

    답글삭제
  7. 껍질인간/ 음;; 짧은 게임플레이와 어려운난이도때문에 FPS장르는 힘들지않을까요 물론 흥행쪽으로요 게임자체는 흥미롭지만서도 ㄷ

    답글삭제
  8. 새로드립 / 뭐 분량이나 난이도는 만드는 사람이 얼마든지 조절할수 있는 부분이죠. 예전 작품과 완전히 똑같이 만들필요도 없는것이고...

    답글삭제
  9. 오홍 혹시 어나더월드 뒤에만들어진(속편은 아니고요) 플래쉬백이린 게엠을 해보셨나요? 지금해봣는데....움빅임에선 진짜 감탄이나오지만 게임플레이는 글쎄네요;;

    답글삭제
  10. 새로드립 / 저는 플래쉬백 나름 재밌게 했었던거 같네요. 요즘 다시 해보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임팩트는 어나더월드가 더 강했죠.

    답글삭제
  11. 20주년기념 어나더월드를 해보고 이회사 게임에 관심이 가졌는데 껍질인간님이 혹평을하시니 더 궁금해지네요
    어나더월드는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답글삭제
  12. anxxxiety / 저도 델핀 게임은 퓨처워즈, 플래쉬백, 어나더월드 이렇게 딱 세개만 해봤는데 어나더월드가 가장 인상적이더군요.

    답글삭제
  13. 껍질인간님 리뷰작 중 가장 왜 리뷰를 쓰셨는지 궁금한 글인 것 같네요. 다른 게임들은 까려고 쓰거나 아니면 뭔가 족적을 남겼거나 그래서인데 유독 퓨처워즈만 전체 리뷰작 중 존재감이 없는 듯한 느낌이네요.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