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2/18

과연 3대 RPG는 죽었는가? (1부)

CRPG를 오래전부터 즐겨왔던 사람들이라면 어쩌다 한번씩은 3대 RPG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그 전설의 3대 RPG가 뭐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데 울티마와 위저드리는 항상 끼고 남은 한 자리를 두고 바즈테일이나 마이트앤매직이 왔다갔다 한다. 혹자는 둘다 껴서 4대 RPG라고 하기도 하더라. 나는 이 3대 RPG라는 말이 어디서 처음 시작되었는지, 누가 꺼낸 말인지도 모르고 거기에 어떤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지금부터 푸는 썰은 철저하게 본인의 경험과 주관에 의한 하나의 '썰'에 불과함을 알려드린다.

왜 뜬금없이 이 시기에 3대 RPG같은 고대의 사어를 꺼내는가. 위저드리와 울티마의 전성기 시절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RPG라는 장르는 지금까지도 저 3대 RPG가 만들어 놓은 틀에서 탈피했다고 할만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CRPG의 역사에 대한 몇몇 글들을 읽어 본적이 있지만 다들 어딘가 핵심이 빠졌거나 내 관점과는 다른 부분들이 꽤 많았기에 CRPG의 계보에 대해 한번쯤 간략하게 정리를 해보고 싶기도 해서이다. 에...음... 사실 진짜 이유는 RPG라는 장르에 대한 개념도 없으면서 RPG가 어떻고 저떻고 인터넷에서 떠들어 대는 헛소리들이 짜증이 나서 일지도 모르겠다.

핑계는 그만 접고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태초에 D&D라는 TRPG가 있었다. 워게임 형식의 복잡한 룰을 판타지 세계의 던전탐험이라는 형식으로 재탄생시킨 이 게임은 특정한 게임도구가 필요없이 종이와 연필, 대화만으로 진행되고 룰을 제외한 모든것을 플레이어들이 스스로 만들수 있었기 때문에 그 어떤 게임보다도 복잡하면서 자유로웠다. 이때 생겨난 D&D덕후들이 PC로 혼자 할 수 있는 D&D게임을 만들기 시작했고 이것이 바로 PC게임의 시초가 되었다. 그러니까 PC게임의 아버지는 D&D라고 봐도 무방한 것이다.

잠깐 사족이지만, 여기서부터 PC게임이 콘솔게임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미디어라는걸 짐작할수 있다. 콘솔게임이 Pong이라는 가장 단순한 실시간 반사신경 게임에서 서서히 발전해온 역사를 가졌다면 PC게임은 비 실시간에 게임이 가질수 있는 가장 하드코어한 형태를 가진 TRPG로부터 서서히 퇴보해온 역사를 가졌다고 볼수있다. 콘솔게임과 PC게임은 처음 시작부터 과정까지 모든것이 완전히 정 반대였던 것이다.

모든것의 시작

7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반까지 PC쪽에서는 D&D를 모방하기위한 여러 실험작들이 있었지만 그 모든 실험들을 천하통일하고 본격적으로 PC게임의 막을 올린 기념비적인 두 작품이 있었으니 바로 조크(Zork)와 위저드리였다. 조크가 그래픽이 없는 순수 텍스트 기반 게임인 만큼  D&D의 Table Talk요소를 극대화한 작품이었다면 위저드리는 컴퓨터의 연산 능력을 이용해 D&D의 룰적인 요소를 극대화한 게임이었다. 그러나 두 게임 모두 본질은 던전에 들어가서 퍼즐을 풀고 괴물과 싸워 보물을 찾아오는 전형적인 D&D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었다. 조크가 D&D의 문과적 해석이라면 위저드리는 D&D의 이과적 해석이랄까.

지금에 와서 조크는 어드벤쳐의 시조로 분류되고 위저드리는 CRPG의 시조로 취급되지만 사실 당시에는 둘다 같은 장르나 마찬가지였다. 90년대 초반까지 PC게임쪽에 RPG라는 장르명은 존재하지도 않았고 모두 통틀어서 어드벤쳐게임 이라고 불렸다. 포인트앤 클릭 어드벤쳐가 등장하고 어드벤쳐 장르가 초기의 성격에서 크게 변질되자 캐릭터 성장 요소가 있는 어드벤쳐 게임을 구분하기 위해 '롤 플레잉 어드벤쳐'라고 부르기도 할 정도로 CRPG는 원래부터 어드벤쳐의 한 갈래였을 뿐이었다.

어드벤쳐 장르에 대한 인식이 루카스 아츠의 포인트앤 클릭 어드벤쳐 같은걸로 잡혀있는 사람들에겐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충격적인 이야기겠지만 조크와 같은 초기 텍스트 어드벤쳐를 플레이해보면 이게 헛소리가 아님을 알게 될것이다. 지금 시점에서는 이건 어딜봐도 포인트앤 클릭 어드벤쳐보다 RPG에 훨씬 더 가깝다고 느낄 것이다. 조크와 위저드리는 둘다 1인칭시점이었고 직접 종이에 지도를 그리고 게임 진행에 필요한 여러 정보들을 노트에 메모해야 했다. D&D가 펜&페이퍼 게임인 만큼 거기에서 시작된 초기 PC게임에도 당연히 펜과 페이퍼는 필수 요소였다.

그러나 조크로 시작된 텍스트 어드벤쳐 게임이 서사적 스토리를 강조해 나감으로서 초기의 비선형성을 잃어가고 D&D로부터 멀어지는 사이에 위저드리는 다른 수많은 D&D덕후들에게 PC게임에 대한 새로운 영감을 제공했다. 현재 우리가 아는 리차드 게리엇, 브라이언 파고, 팀 케인, 데이빗 브래들리, 존 반 케니헴, 워렌스펙터등의 RPG 마이스터들이 이 시기에 게임산업에 들어온 사람들이었고 모두들 예외 없이 PC게임을 만들기전부터 D&D덕후들이었다. 이정도면 PC게임계에 D&D의 영향력이 얼마나 엄청났었는지 대략 짐작이 가리라고 본다.

룰없는 TRPG라고 봐도 좋을 조크

D&D가 PC게임의 아버지라면 위저드리는 CRPG의 아버지라고 불릴만한 게임이었다. 물론 리차드 게리엇의 울티마가 비슷한 시기에 시작되었고 던전의 표현방식도 서로 닮아 있지만 그 완성도에 있어서는 감히 비교조차 민망할 정도로 위저드리는 첫번째 작품부터 모든것이 완성되어 있었고 완벽했다. 위저드리가 표현해낸 던전이 너무나 뛰어났기 때문에 모두가 우러러 볼수밖에 없었고 모두가 따라할수 밖에 없었다. 듄2가 RTS를 시작했지만 스타크래프트가 RTS의 기준이 된것처럼 말이다.

이후 울티마 언더월드가 나올때까지 무려 10년동안이나 어떤 RPG도 던전에 있어서 만큼은 위저드리의 완성도를 능가하지 못했고 위저드리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말이 10년이지 PC게임계에서 그당시의 10년과 지금의 10년은 절대 같은 양의 시간이 아니었다. 막 빅뱅이 일어난듯이 온갖 종류의 게임들이 폭풍처럼 쏟아져 나오던 그때의 10년은 지금으로 치자면 30년과 비교해도 과장이 아니다. 게임 컨텐츠라고는 단 하나의 던전밖에 없는 단촐한 게임이었지만 그 하나의 던전이 10년간의 모든 RPG의 던전을 지배하는 절대 던전이었던 것이다. 아킬라베스로 위저드리보다도 먼저 1인칭 격자식 던전을 시도했던 울티마 조차도 3~5편 까지의 던전은 위저드리에 큰 영향을 받았음을 부정할수 없고 마이트앤 매직이나 바즈테일같은 작품들은 위저드리가 없었으면 탄생조차 불가능했을 작품들이었으며 던전마스터같은 게임은 위저드리의 캐주얼판에 불과했다.

위저드리는 이후 6편부터 마이트앤 매직처럼 하나의 던전이 아닌 여러개의 던전과 바깥세상이 존재하는 방식으로 크게 틀이 바뀌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의 초점은 여전히 극한의 던전구성에 맞춰져있었다. 위저드리는 CRPG에서 던전을 정의했으며 그것을 스스로 발전시키고 홀로 극한에 도달한 게임이었다.

RPG에서 던전이란 빠질수가 없는 첫번째 요소이다. 오죽하면 TRPG의 탄생인 D&D가 제목부터 던전이 들어갔겠나. 뒤쪽의 드래곤즈는 그냥 단순히 용을 의미하는게 아니라 그 던전에 사는 괴물들을 의미하는것일 것이다. RPG라는 장르를 구성하는 규칙중에 이렇게나 중요한 던전이라는 요소를 완성시킨 위저드리는 3대 RPG라는걸 뽑는다면 당당히 첫번째에 들어갈만한 게임이다.

모든 던전을 지배한 절대던전 위저드리

아버지 밑에 자식이 여럿 있으면 말잘듣는 자식뿐 아니라 항상 말안듣고 반대로 가려는 삐뚤어진 자식도 있기 마련이다. D&D덕후들이 어떻게든 PC로 1인용 D&D를 구현하려고 발버둥치는 동안 어떻게든 PC로 D&D의 틀을 벗어난 게임을 만들려고 발버둥친 인간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괴짜, 천재, 변태, 싸이코, 기타등등 정상적인 사고와는 거리가 먼 어떤 명칭을 가져다 붙여도 모자랄만큼 특이한 게임 제작자인 리차드 게리엇이었다.

그가 만든 울티마라는 게임 시리즈는 무려 9편에 온라인 버전까지 있지만 이 모든 게임들이 단지 울티마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묶이기에는 너무나 급격한 변화를 거치고 있기에 하나로 성격을 규정짓기가 참으로 어렵다. 장기적으로 후속작이 나온 대부분의 게임 시리즈가 이전 작품의 틀을 그대로 간직하거나 한두번의 급격한 변화를 겪는것에 비하면 울티마는 매 편마다 마치 10편 뒤의 후속작을 보는것처럼 미칠듯이 변화를 하는데 잘나갈때는 이것이 미칠듯한 발전이었지만 정점을 찍자 그 뒤로는 미칠듯한 퇴보로 이어졌다.

울티마는 그만큼 매 작품이 실험작이었고 새로운 시도를 위해 이전의 장점을 버리는데도 주저함이 없었다. 그리고 이 모든 시도는 어떻게든 정형화된 D&D의 규칙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초기의 CRPG들이 D&D를 흉내내느라 한정된 지역과 공간을 무대로 삼았다면 울티마는 처음부터 그냥 하나의 세계 전체를 구현해버렸고 그것도 모자라 우주로 가고 시간여행을 하고... 스케일이 너무 커서 정신이 나갈것같은 황당함마저 느낄 정도였다. 스케일이 황당할정도로 큰만큼 완성도와 디테일은 끔찍할 정도로 형편없었다. 위저드리가 하나의 던전에 극한의 완성도를 추구한것과는 완전히 정 반대였던 것이다.

진정한 에픽 판타지인 울티마 초기작

하지만 울티마가 추구한것은 TRPG로 구현할수 없는 스케일만이 아니었다. 게임속 세계를 살아있는 세계로 만들기 위해 시뮬레이션적 요소를 도입했고 단일축척의 오픈월드를 구성했다. 기존의 RPG와는 다르게 던전탐험과 전투보다 NPC와의 대화 및 퀘스트 해결의 비중을 높여갔다. 갈수록 TRPG적인 룰을 배제해갔고 마침내는 실시간 게임이 되기까지 했다! 물론 실시간 RPG가 울티마 이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비 실시간으로 시작된 게임이 트랜드 때문에 어쩔수 없이 실시간으로 따라간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새로운 시도를 위해 실시간으로 변화한 RPG는 울티마가 최초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스스로 칼로 배를 가른 행위나 마찬가지였다.)

울티마는 그 자체가 CRPG의 발전을 이끌어온 역사였다. 다른 게임들이 TRPG의 요소를 끌어오는 동안 울티마는 TRPG에는 없는 요소를 끊임없이 시도해왔고 비로소 CRPG가 TRPG의 그림자를 벗어나 독자적인 아이덴티티를 확립하게 만든 가장 큰 일등공신이었다. 그러나 울티마는 강박적으로 변화와 혁신을 추구하다가 결국 스스로의 덫에 걸리고 만다. 원래부터 CRPG중에서도 어드벤쳐성이 높은 게임이었는데 지나치게 RPG요소를 배제하려다가 그냥 어드벤쳐가 걸었던 자멸의 길을 그대로 반복하고 만 것이다.

그래도 울티마가 CRPG에 남긴 유산은 거대했다. 특히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요소는 4~6편이 보여준 비선형 퀘스트 구조이다. 여기서 말하는 퀘스트 구조란 게임 안의 여러 퀘스트중의 단일 퀘스트를 말하는게 아니라 그 단일 퀘스트들이 모여서 이루는 하나의 전체적인 비선형 구조를 일컫는다. 어떤 정해진 서사를 따라 스토리가 전개되는것이 아니라 여러개의 퀘스트를 플레이어의 판단대로 풀어가면서 게임의 전체적인 목표를 알아내고 스스로 해결하는, 작은 여러개의 퀘스트가 모여 커다란 하나의 퀘스트가 되는 구조를 이루는 것이다. 울티마는 다른 어떤 장점보다도 이 장점으로 인해 흥했고 이 장점을 버림으로 인해 망했다.

울티마의 절정기

사실 이 비선형퀘스트 구조는 울티마의 발명품이 아니다. 오히려 초기 어드벤쳐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요소였다. 울티마는 단지 그것을 좀더 드라마틱하고 멋지게 사용했을 뿐이다. 게다가 어드벤쳐는 갈수록 이 장점을 버리고 어드벤쳐가 정작 Adventure는 없는 이름과는 상관없는 다른 장르로 변질해 갔기에 이 어드벤쳐성이 울티마의 공로가 된것이다.

또한 이 비선형 퀘스트 구조는 일본RPG와 서양RPG를 구분짓는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하다. 서양RPG가 비선형 퀘스트를 통해 내러티브를 전달하는, 비록 이야기의 계산된 플롯이 주는 드라마가 없더라도 직접 주인공이 되서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게임적 스토리텔링을 시도한데 반해서 일본RPG는 미리 짜여진 플롯을 통한 소설적, 영화적 스토리텔링을 시도했기 때문에 스토리를 게임플레이와 분리시켜 버렸다. 물론 위저드리처럼 스토리가 없거나 별로 중요하지 않은 던전 크롤링 게임에는 이런 잣대를 들이대서는 안될것이다.

위저드리를 던전RPG라고 부른다면 울티마는 비선형 퀘스트 수행을 통한 내러티브 전달이 주 목적인 '퀘스트RPG'라고 부를만하다. 우리가 서양RPG라고 부르는 장르는 바로 이 두가지 게임방식 -던전RPG와 퀘스트RPG- 로부터 파생되어 왔다. 그래서 3대 RPG를 정함에 있어 위저드리와 울티마는 이견없이 모두가 동의하는 것이다. 그럼 도데체 3번째 RPG는 뭐란 말인가? 왜 남은 한 자리를 두고 바즈테일과 마이트앤매직이 싸우는 것인가. 그리고 이 3대 RPG가 어떻게 무대에서 퇴장했고 현재의 게임들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잠이 오는 관계로 이런것은 언제가 될지 모르는 2부에서 꼐속 얘기하기로 하겠다.

댓글 22개:

  1. ㅋ... 잘 봤습니다.
    조크같은경우는 정말 명작이긴 한데, 제 개인적인 감상으론 RPG란 느낌은 잘 안들더라구요. ㅋ 이게 선입견이라는건가.
    확실히 위저드리가 후대 RPG에 끼친 영향은 굉장하죠.
    앞부분에 언급하신 '좀 부실한 CRPG의 역사에 관한 글'에 대한 얘기를 보니 제가 디씨에 싸질르고있는 글이 생각나 얼굴이 다 붉어오네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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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그러니깐 어서 2편 쓰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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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개인적으론, 3대RPG란 말을 외국애들도 즐겨 쓰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3대RPG란 단어는 주로 예전 '컴퓨터학습'(마이컴의 전신) 같은 국내 잡지들에서 많이 쓰였었거든요. 당시에는 마이트앤매직이 좀 마이너했기에 보통 울티마, 위저드리에 바즈테일을 끼워서 3대RPG라고들 많이 불렀었지요. 개인적으론, 게임의 깊이 자체는 마이트앤매직이 나앗지만, 좀 쌔끈한 외양이나 편의성등에서는 바즈테일이 나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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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근데 이거 왜 댓글 단 시간이 이상하게 나오나? ㅡㅅㅡ
    지금은 분명 2월18일 오전 9시 반경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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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중간에 던전마스터같은 경우는 비록 위저드리의 영향에서 자유로울수 없는 게임이긴 하지만, 후대의 1인칭 파티플 RPG 들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게임이죠. 특히 그 마우스를 이용한 인터페이스라던지, 던전의 그래픽 표현방식등에 있어서요. 심지어 위저드리마저도 6편에와서는 그래픽 표현방식이나 일부 인터페이스에서는 던전마스터의 영향을 어느정도는 받은거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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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ㅇㅁㅂ2 / 예전에 게임스파이가 게재한 RPG의 역사라는 칼럼의 번역본을 본적이 있는데 오류가 너무 많은데다가 내용도 좀 병맛이어서 한번쯤 제가 보는 RPG의 계보를 써보고 싶은 마음이 있긴 했었습니다. 근데 요즘 외국 웹진같은데 올라오는 RPG나 PC게임 역사에 관련해서 올라오는 글들이 예전의 그 게임스파이 칼럼은 명저라고 할만큼 하나같이 개쓰레기같은 글들만 올라오더군요. 보고 있으면 이 인간들이 게임은 플레이해보고 쓰는건지 어디서 줏어들은거만 가져다가 지좆대로 붙여대는지 어이가 없더라구요. 이런 개소리만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꼴을 보자니 속이 터져서 가만있을수가 없더라구요. 영어실력이 딸려서 영문으로는 쓸 자신이 없으니 그냥 이렇게 혼자 구석탱이에 쓰고 딸딸이칠수밖에요. -_-;; ㅇㅁㅂ2님이 디시에 쓰신다는 글은 한번 찾아봐야겠군요.

    외국애들은 3대RPG라는 말은 안쓰고 그냥 클래식RPG라는 말을 쓰더군요. 그리고 상황은 똑같은거 같습니다. 울티마와 위저드리는 꼭 들어가고 바즈테일과 마앤매가 왔다갔다...

    던전마스터는 일종의 과도기적 게임이었죠. 마음은 울티마 언더월드인데 몸은 위저드리인... 한때는 던전마스터스타일이라고 할만큼 한 장르를 확립하는듯도 했는데 울티마 언더월드 나오면서 그냥 완전 찌그러져 버렸죠. 사실 울언이 너무 일찍 나와버렸어요.ㅋㅋ 울언만 아니었으면 스톤키프도 좀 흥했을테고 그 스타일의 수명이 좀 길었을 텐데 말이죠.

    음... 위저드리가 던전마스터의 영향을 받은거라고는 그 밑에 화살표 표시 마우스로 누를수 있는거? 그정도 말고는 잘 모르겠네요.-_-; 그래픽이야 던전마스터 아니더라도 그당시에는 계속 발전하고 있던 상태였고... 거기다 결정적으로 위저드리6 그래픽이 던전마스터보다도 훨씬 구리잖아요.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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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울티마 4 : RPG와 adventure의 조합이라...

    탁월한 통찰이십니다.
    울티마 4를 하면서 뭔지 모를 야릇한 데자부를 느꼈었습니다. 이 느낌, 분명 어디서 받아본 건데...
    이제보니 어드벤쳐 게임의 느낌이었군요.

    하지만 울티마 4의 어드벤쳐성은
    황당무계하고 기상천외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철저한 논리로써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이 특징이었지요(단답식이기는 했지만). 이후의 시리즈에서는 퀘스트가 더욱 복잡하고 체계적으로 바뀜으로써 "시킨걸 했다"가 아니라 "퀘스트를 통해 게임 속에 숨겨진 사실을 조금씩 알아간다"는 쪽으로 진화해 나갑니다. 어드벤쳐를 뛰어넘은 어드벤쳐성을 이루어낸 거지요.

    이런 이유로
    모르는 사람이 처음 접하는 울티마의 오픈월드는 매우 정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게임에 몰입하면 할수록 잠시도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살아 움직이는 세계를 온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적어도 7-1까지는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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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익명 / 아... 언젠가 나중에 따로 이 얘기를 자세히 할려고 빼놓다보니 설명이 좀 부실했군요. 울티마가 어드벤쳐의 영향을 받았다는 얘기는 어드벤쳐의 '퍼즐'에 영향을 받았다는 얘기가 아니라 어드벤쳐의 '비선형적 진행'에 영향을 받았다는 얘기였습니다. 90년대부터 어드벤쳐=선형적 이라는 편견이 자리잡게 되는데 사실 초기 어드벤쳐게임들은 굉장히 비선형적이었습니다. 스토리가 전혀 중요한 장르가 아니었죠. 조크뿐만 이 아니라 미스테리 하우스도 보면 아무 스토리도 없어요. 그냥 단서 모아서 물건 찾는 게임이었죠. 킹스퀘스트도 1편 보면 완전 오픈월드예요.ㅋㅋ 진행도 굉장히 비선형적이구요. 울티마는 퍼즐을 푸는 대신에 npc와의 대화로 단서를 얻는걸로 바뀐것 뿐이고 기본 구조는 완전히 초기 어드벤쳐 게임이죠. 근데 그 비선형적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그안에 엄청 멋진 내러티브를 녹여내서 사람들이 뻑간거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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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편 이야기를 기다리는 한 사람입니다. 시원하게 말씀 잘하시니 재미가 쏠쏠합니다. 추억도 자극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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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익명 / ㅎㅎ 재밌게 읽어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냥 혼자 심심할때 찌끄릴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보는 사람이 많은거 같네요. 왠지 제대로 써야할거 같은 책임감이 느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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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좋은 글에 사소한 태클이겠지만 RPG라는 장르명은 90년대 초반이 아니라 80년대 중반부터 쓰이고 있었습니다. 당장 같은 옛날의 우리나라 컴퓨터 잡지만봐도 85년내지 86년쯤부터 울티마 시리즈를 소개하며 RPG라는 장르명을 대대적으로 내세웠죠. 당시 컴덕 꼬꼬마들에게 이 RPG라는 장르는 '오락실게임과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것!' 이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고요.

    일본쪽도 그때 나온 초창기 컴퓨터 내지는 패미콤 RPG 겜 광고 자료에서도 다들 RPG라는 장르명을 대대적으로 밀었죠.

    미국쪽...까진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만, 당시 한국일본의 겜자료라는게 거의 대부분 미국걸 베껴서 올렸다는걸 생각하면 미국쪽도 마찬가지였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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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익명 / 미국쪽 얘기입니다. 80년대까지 RPG라는건 미국에서는 TRPG를 의미했습니다. 거기는 TRPG라는 단어가 없었던거 같아요. 그냥 RPG였지... 그래서 PC쪽에서 나온 게임들을 롤 플레잉 어드벤쳐 내지는 CRPG라고 불렀습니다. PC게임 잡지에서도 RPG라는 단어를 쓰고 싶으면 꼭 CRPG라고 썼고 거기서도 그냥 RPG라고만 쓰면 그건 TRPG를 의미했습니다. 예를들어서 'CRPG는 RPG가 될수 있는가' 뭐 이런 문장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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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어드벤처하니까 생각나는 건데 대항해시리즈중에서 3를 접했을때 어마어마한 지도의 크기와 수많은 발견물들 자기가 만든 캐릭터로 모험을 한다는게 마음에 들어었죠 수입도 빈털털이로 시작할때 도서관에서 힌트를 얻고 그것을 마음에 들어할 스폰서를 찾아 계약금을 받고 발견한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내용이 마음에 들었었습니다. 그것이만약 발견물에 대한 정보를 도서관외에 지역민들에게 직접 물어보거나 항해에 일어나는 이벤트들을 더 자연스럽고 다양하게 했으면 좋겠구나 했는데 4에서는 게임내용은 극초반과 엔딩만다르고 그저 케릭터성에 공을 들이고 항해나 발견, 교역은 매우 간략하게 만들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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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Argion / 대항해시대는 1,2편만 해봤습니다. 그당시 코에이는 나름대로 괜찮은 게임들을 뽑아내는 제작사였죠. 그런데 90년대 중반쯤? 그때쯤부터 발전은 커녕 오히려 퇴보를 하기 시작하더니 완전 3류 제작사가 되어버리더군요. 하드함과 캐주얼함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 길을 잃어버린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안해봐서 모르겠지만 아마 4편도 그런 고민때문에 그렇게 된게 아닐까 싶습니다. 유저들좀 끌어모아볼려고 좀 캐주얼하게 나갔다가 기존팬까지 놓쳐버렸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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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응? 3대RPG를 들어보긴했지만, 제가들었던거랑은 좀 다르네요
    제가들었던건
    DQ(드래곤 퀘스트)
    FF(파이널 판타지)
    여신전생의 3가지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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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익명// 일본 기준이군요 ^^

    서양쪽은 보통 사람들이 '마이트 앤 메직' '울티마' '위저드리'로 분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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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80~90년대 다양하고 복잡한 게임 형태가 나오는 것은 한마디로 현실세계를 컴퓨터가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연산능력이 뒤떨어졌기 때문입니다. 현실세계의 재미를 컴퓨터 구현하기 위해서 저리도 복잡한 철학과 센스 천재성이 요구되었죠. 하지만 지금 고성은 3D기능이 PC에 일반화되어 저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2000년대 MMORPG가 인터넷을 바탕으로 다중유저의 커뮤니티와 사회성을 이식한 덕분에 과거 전통RPG는 몰락해버렸지만 베데스다의 엘더스크롤과 오리진의 드래곤에이지가 그 틈을 성공적으로 채워넣었고 전통RPG에 리얼한 3D그래픽으로 영화같은 현실을 구현했기 때문입니다. 풀아웃3나 스카이림, 베틀필드3같이 더이상 게임구분은 모호해지고 그냥 진짜 현실에 가깝게 구현 되가는 것이 미래의 게임방향일 것입니다. 과거 복잡했던 게임방식은 이제 역사속의 유물일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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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익명 / 단순히 게임방식의 복잡성만이 변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전달하고자 하는 재미 자체가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RPG나 어드벤쳐들이 문제해결에 플레이어의 많은 생각을 요구했다면 요즘 RPG들은 문제해결 보다는 스토리를 보여주고 캐릭터가 강해지는데 중점을 두죠. 제가볼때 리얼해진건 그래픽적인 표현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던전구조 같은것만 봐도 과거 게임들이 더 리얼한게 많았죠. 과거 게임들이 이제는 역사속의 유물이 되어버렸다는데는 동의합니다. 아니, 유물이라도 됐으면 좋겠어요.ㅠㅠ 유물은 기록이라도 있잖아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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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지금 글을 보면서 굉장히 강하게 든 의문이 있습니다.

    고대의 비밀병기가 숨겨져 있고, 이 비밀병기를 제거하기 위해 주인공은 모험을 떠나고, 결국 비밀병기 앞에 다다라 전설의 명검으로 내리칩니다. 이얍!

    그런데 그 비밀병기는 수천년전 문명붕괴로 인해 잊혀진 핵무기였고, 검으로 어케 할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 긴긴 모험은 결국 애초에 정답으로 향하는 길이 아니었던 겁니다.


    님의 글을 보면서, 결국 최고의 재미는 trpg(물론 rpg가 맞지만 crpg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씁니다)라는 결론밖에 안나옵니다. crpg는 전부 똥입니다.
    1. 역사성
    crpg의 역사 자체가 d&d를 구현하기 위해서 시작된 것. 게다가 d&d 마저도 trpg의 수많은 라이벌 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

    2. 재미
    개인과 , 누군가가 만들어둔 짜여진 프로그램
    말 그대로 상호 작용하는 '사람들'
    둘 중 후자가 더 우월한 재미라는 것은 명백합니다. 다만 현재의 사회형태-미친 자본주의-에서는 정말로 몇몇 '약 빤 수준의 플레이'를 제외하고는 crpg에 게임개발자들이 불어넣어놓은 만큼의 '재미를 위한 요소'를 사람들간의 초보적이고 미숙한 대화와 상호작용이 뛰어넘기 힘들다는 점에서 '현 시점에는' crpg가 trpg보다 더 재미있지만.
    미리 고정되고 제한적인 crpg보다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있는 trpg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우월한 재미를 가질 수 있다는 건 부정할수 없을겁니다.

    물론 crpg, 크게는 컴퓨터/콘솔 게임이 가지는 독자적인 재미라는 것이 있겠습니다. 스타 해도 재밌고 액션게임 해도 재밌죠. 하지만 님의 입장을 더욱 원칙적으로 밀고나가보면, 그 근원까지 파보면
    결국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은 trpg이고, 사람들간에서 사람들이 '현실에서' 만들어내는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이고, 그간의 몇십년간의 crpg의 시도는 결국 일탈, 혹은 마치 신의 말씀을 인간세계에 적용하려 발버둥치다 실패한 마치 플라톤의 이데아와 현실 같은 그런 느낌이 들어서 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trpg도 님이 crpg의 타락에 대해 한탄한 현상을 그대로 동일하게 겪고 있어서 안타깝습니다만, 이건 세대를 넘어서 살아남을 수 밖에 없는 질기고도 가장 근본적인 힘을 가진 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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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그렇다면, trpg, 아니면 그걸 넘어서 가장 원초적인 술래잡기나 소꿉놀이 같은 게임보다 crpg가 우월한 점은 무엇입니까? crpg에만 고유한 독자적인 재미는 무엇입니까? 그것에 답할 수 없다면, 결국 crpg는 사회의 전반적인 소외 현상속에서, 사람들간의 놀이가 사라지고 그 빈자리가 고독한 개인의 컴퓨터질이 채워졌다는 역사적인 안타까움에서 만들어진 어쩔수없는 왜곡된 취미 일 뿐입니다. 그 독자적인 의의는 무엇입니까?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님께서는 이 이유에 대해서 무언가 답할 수 있을것같아서 입니다. 재미에 대해서 깊이 고민한 분께 드리는 제 나름의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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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espree
    정통 RPG 플레이어라 자부하는 본인이 RPG를 제대로 몰랐네요 한때 대학 TR동호회도 운영하고그랬는데 .. 어쩌면 제대로 할려고 할 생각을 별로 안했겠죠. 어쩌면이 아니고 음 사실입니다. 넹 ..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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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익명 / 저는 TRPG와 CRPG는 비교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PC게임이 초기에 TRPG에 강한 영감을 받기는 했지만 나아갈 길은 서로 다르다고 봅니다. 제가 PC게임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그게 이전의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게임과는 다른 새로운 미디어이기 때문입니다. 플레이어 혼자서 게임의 제작자와 1:1로 마주할수 있다는게 저에겐 싱글플레이PC게임의 약점이 아니라 무한한 가능성을 펼칠수 있는 강점이 됩니다. 제작자와 플레이어가 1:1로 만남으로서 소설이나 영화처럼 내러티브를 가진 문화예술미디어가 될수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보면 TRPG는 출판의 문제가 있습니다. 전달할 메세지가 있고 그걸 잘 전달할 능력이 있는 DM이 있다고 하더라도 DM자체는 복제가 안되죠. 그 주변의 몇몇만이 경험할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서플먼트로 시나리오를 출판할수는 있지만 게임을 이끌어가는건 결국 DM이고 DM에 따라 다른 게임이 될수밖에 없기때문에 재연성에 문제가 있을수밖에 없죠. 플레이어의 수나 질에 따라 게임이 달라지는 MMO장르도 마찬가지로 재연성에 문제가 있습니다. 한번 지나가면 끝이죠. 두번다시 어떤 특정한 상태로 되돌릴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는 '작품'이 나올수가 없죠. 전통적인 게임처럼 그냥 '유희'에 그치고 맙니다. 하지만 싱글플레이 게임이라면 몇십년전 게임도 제작자가 원래 의도한 그대로의 게임을 온전히 즐길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반드시 TPRG가 CRPG보다 게임적으로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예를들어 수치 시뮬레이션쪽으로는 TRPG가 CRPG를 도저히 이길수가 없죠. 서로 장단점이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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