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7/04

게임에서의 죽음

게임에서 죽음을 다루는 방식은 크게 두가지가 있는것 같다. 한가지는 고전적인 방식으로 죽으면 게임오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죽음이 없거나 있더라도 별 의미가 없는 방식이다.

어드벤쳐쪽에서는 전자는 시에라 온라인이, 후자는 루카스아츠가 대표적이고 RPG쪽에서는 위저드리와 울티마가 각각에 대응된다고 볼수있겠다. 재미있게도 양쪽다 그 장르를 대표하는 게임들이란게 참 신기하다. 개인적으로는 죽음이 있고 그것의 댓가가 큰 게임을 좋아하는 편인데 이쪽이 더 사실적으로 느껴지고 게임하는 순간에 더욱 깊은 몰입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드벤쳐도 남들 다 좋다는 루카스 어드벤쳐보다 시에라 어드벤쳐를 더 좋아하는 편이다.

대부분의 시에라 어드벤쳐 게임은 죽는 상황이 너무나 다양해서 어떤 사람은 얼마나 기막힌 죽음이 존재하는지 궁금해서 게임을 할 정도라고도 한다. 어느정도로 쉽게 죽냐면, 거의 낭떠러지나 물 근처에 가면 100퍼센트 죽음이고 다리를 건너다가 그냥 다리가 무너지거나 뭘 먹었는데 독이 있어서 죽거나 천정의 샹들리에가 갑자기 떨어져 죽는다던가...

보통 게임에서 죽음은 플레이어가 죽는 상황을 미리 알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시에라 어드벤쳐에서는 전혀 상상하지 못한 상황에서도 죽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건 마치 온 사방에 죽음이 도사리고 있어서 그냥 손가락만 까닥해도 죽음이 덮쳐오는것 같다고 할까... 너무 허무하게 죽는 경우가 많아서 오히려 뭔가 비현실적이고 악의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가끔씩 우리는 뉴스나 주변인을 통해 이러한 상상하지도 못할 허무한 죽음을 목격하곤 한다. 확률은 적지만 사람이란 문지방에 걸려 죽을수도 있는 존재인 것이다. 오죽하면 접시물에 코박고 죽는다는 속담도 있을까. 확률의 문제일뿐 실제로 죽음이란 전혀 예측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죽음이란 삶과 항상 붙어다니는, 아니 오히려 삶이란게 죽음의 반동일뿐인 언제 꺼질지 모르는 나약한 촛불과 같은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시에라 어드벤쳐야말로 정말 실제적인 삶을 표현한 게임이 된다고 볼수있다.

반면에 루카스 어드벤쳐는 죽음도, 게임 진행이 꼬일 염려도 없는, 무엇을 하든 마음놓고 편하게 할수있는 게임들이 많다. 억지로 죽으려고 애를써도 절대 죽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으며 가끔씩 죽더라도 바로 되살아나는 관대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따라서 게이머는 게임을 진행하는 동안 완전히 긴장의 끈을 풀어놓고 스토리 진행에만 집중하게 된다. 죽음이나 실패의 위험이 없으니 그저 포기하지 않는 근성만 있으면 게임의 엔딩을 보는데 문제가 없다.

확실히 게임을 하는 도중에는 이런 긴장감 없는 게임플레이가 어딘가 밋밋하고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지만 또 생각해보면 이것도 인생의 한 단면을 연상시키는 부분이 있다. 우리 인생에서 절대적인 실패라는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무시할만한 낮은 확률의 재수없는 죽음을 무시한다면 실질적으로 인생은 포기하는가 포기하지 않는가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고 볼수있다. 어렸을때는 작은 실패라도 마치 세상이 끝난것 같고 게임오버인것 같아서 인생리셋을 하고 싶을때도 있지만 지나고보면 결국 아무것도 아닌것을 알게된다. 인생을 더 진행시킬것인지 아닌지는 성공이나 실패가 아니라 본인의 의지가 결정하는 것이다.

죽음을 다루는 방식이 정 반대이지만 두가지 방식 모두 현실의 삶을 반영하는 것은 틀림없다. 그래도 이상적인 지점을 찾자면 그 두가지의 중간쯤이 아닌가 생각된다. 죽음의 공포가 너무 가까워서 수도 없이 죽는것도 아닌, 아예 죽음이 없어서 긴장없이 늘어지는것도 아닌, 긴장감이 있을 정도지만 어떤일을 해볼때 죽음의 두려움이 너무 크지는 않는 그런 지점 말이다.

댓글 4개:

  1. 저는 죽어서 처음하는 시스템에서 싫어하는점이 했던 부분을 처음부터 또해야 한다는것이 엄청짜증나더군요. 하지만 죽지않으려고 엄청 긴장하면서 플레이하는 묘미도 있지만요.
    그렇다면 죽는다면 30분에서 1시간 정도 게임을 할수없게 만드는 시스템은 어떨까요? 했던 부분을 다시 할 필요도 없고 게임을 도중에 끊기지 않도록 엄청긴장하면서 플레이하게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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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익명 / 저도 예전에 비슷한 생각을 해봤죠. 죽으면 다음날까지 게임이 실행이 안되면 어떨까 하면서요. 뭐 대부분의 사람들은 짜증내면서 그냥 그 게임을 안해버릴거라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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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이야 이 글도 무척 재밌는데요! 놀라운 고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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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feveriot / 감사합니다! 근데 지금 다시 보니까 쫌 닭살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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