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2/06

미스트 3: 엑자일 (Myst 3: Exile)

발매년: 2001
개발사: Presto Studios
유통사: Ubi Soft
플랫폼: Windows

난이도 설정: 없음



리븐의 제작을 마친 Cyan은 미스트의 게임 판권을 Ubi에 팔아버린다. pc게임 역사상 유래가 없는 대히트를 기록한 게임의 판권을 사들인 Ubi는 이게 왠 떡이냐 싶어서 무려 5편까지 계약한다. 게임제작에서 손을 뗀 Cyan은 이후로 미스트 세계관의 소설을 출간하는데만 주력한다.

무릇 원작자의 손을 떠난 명작이란 그 후속작이 아무리 잘 나와봐야 전작을 뛰어넘지 못하거나 본질이 바뀌어 이름만 같은 다른 작품이 되기 십상이다. 더욱이 리븐같은 초절정 명작의 후속작이라면 애초부터 그저 이름에 똥칠이나 하지 말았으면 하는 수준의 기대밖에는 할수가 없다. Cyan이 판권을 팔아버린것도 리븐을 능가할 후속작을 만들 자신이 없었기 때문일것이다.

필자는 리븐의 감동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엑자일을 시작했지만 마음속으로 최대한 기대는 접어놓고 그저 미스트의 세계관과 본질에 흠집이나 내지 않기를 바랄뿐이었다. 그러나 그 기대라고 할수도 없는 최소한의 부탁조차도 너무나 큰 기대였음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부터 깨닫기 시작했다.

우선 제목부터가 뭔가 이상했다. 1편의 제목인 미스트는 게임의 무대가 되는 에이지의 이름이었다. 2편의 제목도 리븐이라는 에이지의 명칭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미스트의 후속작임을 알리기 위해 그 밑에 작은 글씨로 '미스트의 후속작'이라고만 써놓았을뿐 어디에도 커다랗게 '미스트2' 라고 써놓지는 않았다. 리븐에는 미스트라는 에이지가 등장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시리즈 세번째 작품은 앞에 커다란 글씨로 '미스트 3' 이라는 제목을 부여함으로써 그 전까지의 통일성을 깨고 있다. 그렇다고 뒤에 붙은 엑자일이라는 부제가 에이지의 명칭인것도 아니다. 제목에서부터 미스트 시리즈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있다.

제목의 찜찜함을 뒤로하고 게임을 시작하면 한번 더 황당함을 맛볼수 있다. 오프닝 동영상과 함께 거창한 오케스트라 음악이 들려온다.
오케스트라라니! 미스트에 오케스트라라니!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미스트에 오케스트라라니~!! 이건 말도안된다구우~~!!!
처음부터 삽질이 영 좋지않은곳에 행해졌다. 미스트의 1/3은 바로 그 미스테리어스한 음악이었다. 그 요상스럽고 으스스한 음악이야말로 미스트 시리즈의 성격과 딱 들어맞는 것이었고 게임의 분위기를 완벽하게 설명해 주는 요소였다.

애초부터 미스트의 스토리는 거창함과는 거리가 멀다. 배경설정이야 수많은 세계가 뚝딱 만들어지고 없어지는 무지막지한 스케일이지만 플레이어가 게임상에서 경험하는 사건은 그저 낮선 섬에서 한 가족의 숨겨진 이야기를 쫒는 작은 추리물에 지나지 않는다. 근데 이 뭐 완전 에픽삘의 오케스트라가 웬말인가. 도데체 뭔 거창한 이야기를 할려고 시작부터 전혀 미스트와 어울리지 않는 오케스트라가 흐르는 것인가.

시작은 뭔가 앞으로 거창한 일이 벌어질것 같기도 하다. 첨보는 왠 거지같은 놈이 아트러스에게 원한을 불태우며 책을 훔쳐 달아나는게 예사롭지 않다. 뭔가 굉장한 드라마가 펼쳐질것만 같다. 그러나 뭔가 드라마를 만들것 같은 이 도둑놈은 엔딩직전을 제외하고 이후로 두번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드라마는 개뿔. 드라마의 드자도 떠올릴수 없는, 아니 애초에 스토리 자체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어느정도로 스토리가 없냐면 부실하디 부실한 1편보다 스토리가 없다. 초반에 거창한 음악과 뜬금없는 등장인물로 한껏 분위기 잡아놓고는 게임을 진행하면 할수록 처음 그건 뭐였지? 하는 생각만 들게 만든다.

그럼 시작부터 미스트의 전통을 거부하는 이 게임은 따라하기를 거부하고 자신들만의 새로운 게임을 만들 심산이었을까? 우선 3편을 만든 프레스토 스튜디오는 리븐을 아예 없는 게임 취급한다. 실제적이고 개연성있는 무대와 디테일, 스토리와 퍼즐의 결합, 게임 진행의 비선형성등 이 모든 리븐에서 발전된 장점들을 최소한 약간이라도 시도할 생각이 눈꼽만큼도 없었음은 확실하다.

대신 1편인 미스트에 대한 철저한 따라하기는 도를 넘어선다. 게임의 기본 구조부터가 완전 미스트를 그대로 본뜨고 있다. 베이스 에이지 하나에 연결된 4개의 다른 에이지, 하나의 에이지를 클리어 할때마다 베이스 에이지로 돌아와 새로운 에이지로 가는 문을 여는 퍼즐을 해결하는 완전히 동일한 방식이다.

미스트를 플레이 한 후에 바로 이 게임을 한다면 최소한 이 구조의 동일함이 그렇게까지 거슬리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2편인 리븐에서 이런식의 구조를 완전히 갈아엎고 발전을 넘어 진화라고 할만큼 커다란 변화를 겪은 부분이 3편에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것을 목격하면 후속편을 플레이하는 것인지 리메이크를 플레이하는것인지 그저 어처구니가 없고 기가막힐 따름이다.

여기까지만 봐도 딱 이 게임의 제작의도를 짐작할수 있다. 미스트라는 세계관과 게임의 본질에는 1g의 관심도 없는것이며 그저 미스트의 상업적 성공만을 재현하는데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리븐을 무시하고 최대한 미스트를 카피하는데만 집중한 것이다. 그렇다고 엑자일이 미스트를 제대로 카피했느냐 하면 그게 또 그렇지 않다는 것이 머리를 아프게 한다.

미스트는 퍼즐게임이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배경 스토리는 존재했다. 베이스 에이지에는 각 에이지에 대한 스토리를 담은 일지가 있어서 그 에이지의 역사와 사건들을 알수 있었고 그 이후의 일에 대한 궁금증이 탐험과 퍼즐해결에 대한 동기를 부여했다. 또한 배경 디테일에 자세하게 설명되지 않는 요소들을 넣어 플레이어로 하여금 스토리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펴도록 자극했다. 이러한 요소들이 실제로는 그저 퍼즐 게임임에도 상당한 몰입감을 제공했고 바로 이 몰입감이 미스트의 본질이며 리븐에서 완성된 요소였다.

하지만 프레스토 스튜디오는 미스트를 철저히 베끼려고 했으면서도 그 미스트의 재미의 본질이 뭔지 전혀 감을 못잡은것 같았다. 일지의 내용이 게임의 배경과 결합되어 자세한 스토리는 플레이어 스스로 상상하도록 만들었어야 했는데 엑자일의 일지는 게임의 무대와는 거의 아무런 관련이 없다. 게임 무대와 동떨어져 단지 책 도둑놈의 동기를 밝히는데 쓰였을 뿐이다. 끝날때 딱 한번 만나는 잘 알지도 못하는 놈의 동기가 플레이어에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대부분의 시간을 소비하는 게임 무대가 훨씬 중요하다. 일지가 무대와 결합되지 못하니 무대가 스토리와 결합되지 못하고 무대를 헤메는 플레이어는 퍼즐을 푸는 동기를 찾을수 없게 된다.

심지어 엑자일의 게임 무대에는 최소한의 설정조차 없다. 도저히 개연성을 찾을래야 찾을수 없는 형태를 갖춘 엑자일의 게임 무대는 이 괴상한 형태를 설명하기 위해 퍼즐을 위한 에이지라는 황당한 설정을 사용한다. 왜 이곳에 이런 퍼즐이 있는가? 라는 질문에 이런 대답을 하고 있는 것이다.
'퍼즐이 있는곳이라서 그렇다.'
퍼즐의, 퍼즐에 의한, 퍼즐을 위한 에이지에서 도둑놈이 훔쳐간 책을 찾아오는게 이 게임의 스토리의 전부다. 퍼즐은 게임 스토리와 아무 상관도 없고 배경이 되는 에이지도 게임 스토리와 아무 상관이 없다. 플레이어는 그냥 도둑을 쫒을 뿐이다.

미스트의 일지에는 각 에이지의 퍼즐에 대한 힌트도 제공했다. 이 힌트가 약간 모호하게 쓰여져 있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무엇이 힌트인지 일지의 내용 전체를 떠올리고 생각해 봐야 했다. 이러한 요소도 엑자일에서 그대로 따라했는데 문제는 그 힌트가 간접적인게 아니라 그냥 대놓고 여기 힌트가 있으니 이걸로 퍼즐을 푸세요 하고 매우 직접적으로 쓰여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일지가 너무 작위적으로 느껴져서 진짜 누군가 써놓은 일지라는 현실적인 느낌은 개뿔도 없다.

스토리도 없고 게임플레이에 개성도 없고 게임 요소는 전부 따로 놀고... 그렇다면 퍼즐의 질은 어떨까? 한마디로 최악이다. 이유도 없는 퍼즐을 풀어야 하는데 그게 완성도까지 엉성하니 참 죽을 맛이다. 볼테익 에이지는 그냥 무슨 애들 장난감같은 수준의 시시한 공굴리기 퍼즐에 불과하며 에다나 에이지는 구조 자체가 선형적이라 그냥 퍼즐을 하나씩 풀면서 아래로 내려가면 된다. 근데 퍼즐이 얼마나 엉성하냐면 작동되는걸 하나씩 움직이다 보면 퍼즐의 매커니즘을 미처 알아채기도 전에 해결되버릴 정도이다. 그나마 아마테리아 에이지가 다른곳보다 약간 나은 수준인데 필자가 유일하게 한번정도 생각이라는걸 할 기회가 있었던 곳이다.

각 에이지는 나름대로 하나의 테마를 가지고 방문자에게 자연의 힘을 가르치겠다는 의도인데 게임상의 설정 그대로 10대 초반의 어린애 한테나 먹힐만한 난이도와 컨셉에 불과하다. 참신하거나 머리를 탁 칠만한 고정관념을 부수는 퍼즐도 없다. 약간 어려운 퍼즐이라고 해봐야 의미도 없이 배배 꼬아놓았을뿐 기발한 요소는 눈을씻고 찾아봐도 없다. 다 큰 성인이라면 왜 내가 이런 재미도 없는 시시한 퍼즐을 풀고 앉아있어야 하는지 짜증을 느낄것이다.

각 에이지에서 이 짜증나는 퍼즐을 다 풀고나면 갑자기 보상 동영상이 나오기 시작한다. 기차를 타고 뱅뱅 돌거나 새를 타고 날거나 뭔가 거대한게 움직이거나 뭐 그런 시시한 것들이다. 아, 이것만은 엑자일만의 오리지날 요소라고 할수 있겠다. 보상 동영상.

이 보상 동영상을 보고나면 기분이 확 나빠진다. 지금껏 재미도 없는 퍼즐을 열심히 풀었으니 동영상이나 쳐 보면서 희열을 느끼라는 것인가? 이건 미스트 시리즈에 대한 강간이나 다름없다. 게임의 깊이를 시시한 퍼즐이나 풀고 동영상이나 보면서 감탄하는 얄팍하기 그지없는 자위물로 전락시켰다. 게임플레이가 정말 자위를 연상시킨다. 고통을 참으며 힘겹게 절정에 다다르면 사정을 하듯 보상 동영상이 뻥 터지는 것이다. 마치 싫은 상대에게 억지로 자위를 당한것 같은 더러운 기분을 느끼게 된다.

이런 역겨운 얄팍함은 게임의 모든곳에서 흘러 넘친다. 게임플레이뿐만 아니라 배경의 디자인 자체도 얄팍하기가 끝이 없다. 리븐의 비주얼 디자인은 철저히 기능적이었다. 모든 디자인에는 이유가 있었고 개연성이 있었고 논리가 있었다. 작은 장식 하나에까지 이유가 있었으며 그 모든것들이 스토리를 설명하고 있었다.

그러나 엑자일의 비주얼 디자인은 리븐은 커녕 미스트 만큼의 개연성도 없다. 그냥 멋져보인다고 생각한건 다 가져다 붙인것 같다. 이유따윈 전혀 없다. 그냥 멋져 보이니까. 이게 이유다. 겉으로 보기에는 엄청나게 화려하지만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 텅텅 빈 껍질만 요란하다.
이렇게 화려하고 환상적이니 끝내주지? 뿅가지? 쌀거같지? 시종일관 이렇게 외치는듯 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플레이어를 절정에 보내고 빨리 돈이나 받아내고 싶은 싸구려 매춘부를 연상시킨다.

이 얄팍한 게임에 어울리지 않게 제작자는 마지막 퍼즐에 뭔가 심오한 철학적인 메세지라도 넣어보려는 시도를 하지만 그것조차도 불쌍할 정도의 얄팍함을 드러낸다. encourage, future, spur 뭐 이런 얄팍한 듣기 좋은 단어에다가 자연의 힘을 대응시키겠다는 딱 열살짜리 꼬맹이가 생각할만한 진부하고 유치하다는 단어조차 아까운걸 철학이랍시고 대미를 장식하는 퍼즐에 사용했는데 이 퍼즐이야말로 엑자일에 등장하는 모든 퍼즐중에 최악의 퍼즐이다. 메세지를 퍼즐로 전달하려면 퍼즐의 해결 방법 자체가 메세지의 전달을 해야하는데 그냥 메세지 그 자체를 대놓고 쓰는게 퍼즐이라니 상상력의 빈곤함도 이정도 되면 레전드라고 할만 하겠다.

엑자일은 스토리의 부재가 어드벤쳐게임에 어떤 재앙을 불러오는지 보여주는 매우 드문 사례라고 할수있다. 스토리가 약한것과 스토리가 아예 없는것은 다른 종류의 문제이다. 어드벤쳐 게임에서 퍼즐을 연결하는것은 스토리이며 스토리의 부재는 최고의 퍼즐조차도 쓰레기로 만들 가능성이 있다. 퍼즐을 풀고싶은 동기를 제공하지 못하는 퍼즐은 아무리 많이 모아봐야 퍼즐 모음에 불과할 뿐이지 그것이 하나의 일관된 작품이라고 할수는 없다.

결론적으로 엑자일은 미스트 시리즈에 지울수 없는 똥칠을 한 작품이다. 다행이도 프레스토 스튜디오의 제작은 엑자일만으로 끝났으며 4편과 5편은 다른곳에서 만들어졌으니 망정이지 안그랬다면 4,5편은 시도해 볼 생각조차 없었을 것이다. 3편은 미스트 전 시리즈 중에 최악의 작품이며 스토리가 없는 만큼 플레이 하지 않아도 이야기의 흐름에 전혀 무방한 작품이다. 미스트 시리즈를 즐기고 싶은 사람은 이 게임은 절대적으로 피하기 바란다.



평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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